서울도 남도도 한꺼번에 활짝 자홍색 꽃 펼쳐
중국 원산, 서양에선 유다나무로 ‘배신’의 상징

▲ 박태기나무는 꽃이 펴는 시기에 꽃망울이 마치 밥알같아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는 개화시기가 빨라 3월 말부터 박태기나무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 박태기나무는 꽃이 펴는 시기에 꽃망울이 마치 밥알같아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는 개화시기가 빨라 3월 말부터 박태기나무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3년 04월 16일 17:15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물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따라 달리 정의된다. 게다가 지역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순간 선악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 계절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 박태기나무라는 이름의 나무가 있다. 자홍색의 꽃이 한순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꽃이다. 이 나무도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나무이다.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이 땅에 들어온 지 오래되어서인지 들과 산에도 많이 보이고 집주변 녹지공간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나무다. 보통 4월 중순 이후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이 꽃도 시간을 재촉하듯 빨리 모습을 드러내 한창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원이나 고궁에서 만나는 박태기나무는 꽃을 보기 위한 관상용으로 식재된 경우가 많지만, 들에서 보는 박태기나무는 거의 손질 되지 않은 채 울타리를 대신해서 심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꽃이 피는 계절은 덤으로 꽃을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계절에는 빽빽한 나뭇가지가 울타리가 돼주기 때문이다. 특히 박태기의 꽃 색이 너무 강렬해 다른 나무와 같이 두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나무의 이름은 왜 박태기일까. 북한에서는 피어나려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고 해서 이 나무를 ‘구슬꽃나무’라고 부르고, 한자명은 소방목, 자형목, 만조홍 등으로 나온다. 소방목을 제외한 두 이름은 모두 꽃의 색깔에서 연유한 이름인 것을 보면 직관적으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원산지가 중국이어서인지 영어권에서는 중국의 붉은 꽃봉오리를 뜻하는 ‘차이니스 레드버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르는 박태기는 어떻게 만들어진 이름일까. 이 이름은 피기 시작한 꽃이 마치 밥알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밥알의 방언에는 ‘밥티기’ ‘밥풀떼기’ ‘밥띠기’ 등이 있는데 이 단어들이 박태기가 된 듯하다. 물론 자홍색 밥풀은 왠지 어울리지 않지만, 식량이 부족한 그 시절의 봄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나무의 정체성이 달라지는데 극단적인 경우는 서양의 박태기나무다. 서양에서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목을 매어 죽은 나무라 해서 ‘유다나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지금도 박태기나무를 배신의 상징으로 여긴다고 한다. 

우리는 배가 고파 박태기가 되었고,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유다의 자살목이어서 배신의 상징이 되었고, 중국에서는 꽃의 색에 따라 직관으로 이름해 자형과 만조홍이 된 것이다.

▲ 4월 중순에 피기 시작하는 박태기나무는 자홍색 꽃색깔이 강렬해서 인상적인 나무다. 중국이 원산이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된다. 집안의 울타리나무로도 자주 쓰이는 나무다. 사진은 경복궁에 있는 박태기나무다.
▲ 4월 중순에 피기 시작하는 박태기나무는 자홍색 꽃색깔이 강렬해서 인상적인 나무다. 중국이 원산이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된다. 집안의 울타리나무로도 자주 쓰이는 나무다. 사진은 경복궁에 있는 박태기나무다.

물론 이런 내용만 전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박태기를 형제애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려 후기의 이곡의 시문집 《가정집》에는 ‘자형나무 그윽이 정원에 있도다’라는 구절로, 조선 후기의 이현일의 시문집 《갈암집》에는 ‘형수는 아침마다 다투어 꽃을 피우고’라는 글에서 박태기나무를 담아내고 있다. 

우리 문학에서 박태기에 대한 대표적인 표현은 소설가 박완서의 단편 《친절한 복희씨》에 나온다. 이 소설의 제목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 박태기나무가 등장하는데 다음과 같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헐벗은 우리 시골 마을에 있던 단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를 어쩌지. 그러나 박태기나무가 꽃피는 걸 누가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떨림을 감지한 대학생은 당황한 듯 내 손을 뿌리쳤다.”

박태기의 꽃 빛깔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지금은 서울과 남도 모두에서 박태기나무가 한창때임을 증명하고 있다. 아쉽다면 고궁으로 발걸음을 해보자. 만개한 박태기를 아쉽게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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