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식물 서양민들레가 우점종, 토종은 안 보여
이상화 시에 나온 ‘맨드라미’도 민들레의 사투리

▲ 토종민들레는 전체 민들레의 10% 정도라고 한다. 서양민들레에 비해 색이 연한 노란색을 띤다.
▲ 토종민들레는 전체 민들레의 10% 정도라고 한다. 서양민들레에 비해 색이 연한 노란색을 띤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 등장하는 맨드라미라는 꽃을 붉은색 닭 볏처럼 생긴 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경상도 사투리로 민들레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민들레를 ‘맨드레미’ 혹은 ‘민달래’ 등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민들레는 이름이 참 많은 식물이다. 사립문 안팎으로 흔하게 핀다고 해서 ‘문들레’, ‘무운들레’라고 부르기도 하고 ‘앉은뱅이꽃’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또 쓰디쓴 나물이어서 ‘고채(苦菜)’라고도 부르며 봄이 되면 들에 지천으로 노란색 꽃을 피운다고 해서 ‘만지금(滿地金)’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불리던 민들레는 지금 우리가 봄에 만나는 민들레와 다르다. 이상화의 시에 등장하는 민들레는 ‘토종 민들레’고 지금 들이나 도시의 골목길 돌 틈에서 만나는 민들레는 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다. 모두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양민들레는 꽃이 피는 기간이 토종에 비해 상당히 길다. 

토종 민들레는 3~5월 사이에 한차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날리지만, 서양민들레는 3~9월 사이에 여러 차례 꽃을 피운다. 씨앗의 크기도 서양민들레가 작아 더 멀리까지 날아간다. 따라서 서양민들레의 번식력이 토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어서 토종 민들레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 토종민들레에서 가장 많은 색을 보이는 것은 하얀색이다. 서양민들레는 총포가 내려진 모습이고 토종은 올라가 있다.
▲ 토종민들레에서 가장 많은 색을 보이는 것은 하얀색이다. 서양민들레는 총포가 내려진 모습이고 토종은 올라가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토종 민들레는 가루받이할 때 같은 종의 토종 민들레와 수분을 한다고 한다. 그것도 곤충들의 도움을 받아야 씨앗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민들레의 이런 특징을 잡아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말도 만들어졌다. 이에 반해 서양민들레는 자가수정을 통해 씨앗을 만들 수 있어서 전체 민들레의 90% 정도는 서양민들레라고 한다. 

이처럼 서양민들레가 우점종이 되었다고 해서 토종 민들레보다 더 생명력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1년 내내 꽃을 피울 수는 있지만, 다른 식물들이 한창 자라는 여름에는 경쟁에서 밀리기 일쑤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척박한 토양에서도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는 것이다. 도시의 골목과 길가에서 민들레를 볼 수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대신 토종 민들레는 땅을 가려가며 뿌리를 내리는데 봄에 빨리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날려 보낸 뒤 뿌리로만 생존하며 이듬해 봄을 기다린다. 여름에는 다른 식물과의 경쟁을 피해 씨앗이나 뿌리는 땅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전략을 선택한다. 즉 토종은 토종대로 잘 성장할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해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고 서양민들레는 흙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뿌리를 내려 개체수를 늘려간다. 

그런데 토종의 개체수가 서양민들레에 비해 적다는 점을 들어 귀화식물에 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토종 민들레는 서양민들레보다 씨앗의 숫자는 적지만 발아율이 높다고 한다. 게다가 서양민들레가 이 땅에 들어와서 바로 우성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민들레는 열악한 환경에서 견딜 수 있도록 강한 번식력을 지녔지만, 토종과 교배되면서 더 경쟁력을 갖춘 유전자를 갖게 된 결과, 우성이 됐다. 

박완서 작가의 〈옥상의 민들레꽃〉이라는 소설에는 “옥상은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아 흙이라곤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야외로 소풍 가서 본 민들레꽃보다 훨씬 작아 꼭 내 양복의 단추만 했습니다만 그것은 틀림없는 민들레꽃이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서양민들레는 시멘트 바닥이 조금 팬 곳에 흙이 조금이라도 모여 있다면 민들레는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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