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만 14번…적격비용 재산정 취지 퇴색
수익 보전 위해 카드혜택 축소 불가피
소상공인 감싸다 카드소비자 외면한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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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5일 17:2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무이자할부와 같은 대표적인 카드 혜택이 점차 줄어들고 있죠. 카드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혜택 축소로 결제실적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카드사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합니다. 무려 14번이나 인하된 가맹점 수수료율 때문입니다.

가맹점 수수료율은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에 따라 결정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마다 적격비용을 산정하고 있죠. 적격비용은 일종의 결제 원가로 자금조달비나 위험관리비, 마케팅비 등 다양한 비용을 고려해 산정한 금액입니다.

적격비용이 이전보다 높다고 산정되면 수수료율을 인상하고, 그 반대면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방식입니다.

원취지대로라면 관련 비용이 증가할 경우 수수료율이 인상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단 1번의 인상도 없었습니다. 정치권이 소상공인 표를 의식해 수수료율 인하에만 힘을 실어준 영향입니다. 인하를 위한 명분으로만 쓴 거죠.

카드사의 시름만 깊어가고 있습니다. 수수료율이 원가 내지는 역마진을 유발하는 수준까지 떨어진 까닭입니다. 이 현상은 코로나 엔데믹 등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나며 카드 결제액은 늘었지만,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오히려 줄어든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1~2022년 카드 결제실적 및 가맹점 수수료 현황
2021~2022년 카드 결제실적 및 가맹점 수수료 현황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사 총 신용·체크카드 이용액은 1076조6000억원으로 전년(960조6000억원) 대비 116조원 늘어났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7조7030억원에서 7조4724억원으로 2300억원 감소했습니다.

젹격비용 산출체계 개편이 카드사들의 숙원으로 평가되는 이유입니다. 결제실적을 올려도 수익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업계를 대변하는 여신금융협회가 수수료율 제도 개편을 주요 과제로 선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완규 여신협회장은 지난해 말 취임 당시 제도 개편을 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규제 완화에 최선을 다할 것을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취임 일성이 무색하게 조그마한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도 개편 계획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과 협력해 진행 중인 태스크포스(TF)의 결과물이 애초 예상보다 훨씬 늦어진 까닭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까지 개선안을 발표하기로 했지만 1년가량을 미뤘습니다. 올해 내 도출로 목표를 수정한 것이죠.

여신협회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소통을 지속해 업계 고충과 개선방안을 전하고 있다”라며 “이해관계가 상충한 당사자들이 여럿 되다 보니 금융당국도 고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관련 사안을) 상시적 업무로 보고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카드사도 서서히 답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년에 도래하는 총선 때문이죠. 하루빨리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앞선 결과처럼 정치 논리에 완패를 당할 상황입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여신협회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한다”라면서도 “협회가 업계를 대변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아쉬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생존을 위해 부득이하게 무이자할부 등 소비자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 민감한 수수료율을 개편하기보다 우회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카드사가 가맹점이 체감할 정도로 제공 서비스를 확대해 수수료율 인하 필요성을 낮추는 방안이 그렇습니다.

조윤서 여신금융협회 지원본부장은 지난해 10월 「한국 신용카드시장의 거래구조 및 가맹점수수료율에 대한 제도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러한 개선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카드사가 가맹점에 단순 결제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겸영 및 부수업무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며 “가맹점은 카드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대비 수수료율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거부감이 계속될 경우 정부의 개입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맹점 지원을 위한 서비스로 창업 컨설팅, 기술적 지원, 투자 등의 금융서비스, 소비자와의 연결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 플랫폼 사업모델 등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습니다. 수수료율을 인상하기 어렵다면 카드사 부수업무를 확대해 숨통을 틔워주라는 의견입니다.

무엇이 됐든 가맹점-카드사-소비자의 총 효용을 확대할 수 있는 세심한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내년 적격비용 재산정을 앞둔 당정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요.

대한금융신문 정태현 기자 jth@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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