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에서 유래한 나무 이름, 북한에선 ‘구름나무’
5월도 되기 전에 숲은 흰 꽃나무 전성시대 맞아

3월이면 연두색 이파리를 내밀면서 숲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귀룽나무. 이 나무의 잎을 보면서 농부들은 농사철이 왔음을 직감하고 농기구를 정비했다고 한다. 사진은 북한산 등산로에서 만난 귀룽나무다.
3월이면 연두색 이파리를 내밀면서 숲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귀룽나무. 이 나무의 잎을 보면서 농부들은 농사철이 왔음을 직감하고 농기구를 정비했다고 한다. 사진은 북한산 등산로에서 만난 귀룽나무다.

초여름도 되기 전에 산은 흰 꽃 세상이 된 듯하다. 귀룽나무, 때죽나무, 팥배나무, 마가목까지 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제철을 맞은 듯 제각각 뽐내고 있다.

원래는 5월쯤 돼야 고개를 내미는 꽃들이다. 이르게 다가오는 계절을 나무들이 신나서 맞이하는 형세다. 그중에서 여름날 뭉게구름처럼 나무를 구름 모양으로 만드는 나무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귀룽나무다. 

귀룽나무는 봄철 가장 먼저 연두색 이파리를 터뜨려 잎으로 봄을 전하는 전령사이기도 하다. 3월 하순, 절기는 봄이지만 아직도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는 숲에서 귀룽나무 이파리가 기지개를 켜면 비로소 사람들도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틔운 이파리를 보면서 예전 사람들은 농사철이 다가왔음도 알게 된다. 그 덕에 쉬고 있던 가래와 써레 등의 농기구들은 햇빛을 보며 한 해 농사 준비에 바쁜 농부들의 체온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궁궐에서도 잿빛의 삭막함을 벗어나게 해준 이 나무의 이파리에서 봄을 체감하며 그해 농사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귀룽나무가 북한산과 관악산, 아차산 등 서울에 있는 주요한 산을 흰색 꽃으로 출렁거리게 한다. 이파리가 봄의 전령이었다면 하얀 꽃은 여름의 신호탄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더불어 귀룽나무의 흰 꽃은 하얀색 꽃이 펼치는 장거리 계주의 첫 주자가 돼 봄 산을 여름 산으로 옷을 갈아입힌다. 아카시가 그렇고 가죽과 때죽, 마가목, 회화나무도 그렇다. 이 나무들은 이파리로 먼저 봄을 호흡하고 여름이면 날개를 달고 온산을 하얀색으로 뒤덮는다. 

앞서 말했듯 꽃이 만발한 귀룽나무는 구름처럼 보여 북한에서는 구름나무라고 부른다. 참 직관적인 이름이다. 귀룽나무라는 이름보다 더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귀룽은 원래 구룡(九龍)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을 닮았다고 보는 것인가. 나무 줄기의 용트림하는 모양새는 용의 형상을 닮았지만, 수령이 오래된 귀룽나무에서도 아홉 마리의 용을 찾아내기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가 경북대 명예교수인 박상진의 《궁궐의 우리나무》를 보면 “귀룽나무란 이름은 ‘구룡’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쓰고 있다. 이해되는 설명이다. 

귀룽나무는 4월 중순부터 5월초까지 하얀색꽃을 핀다. 꽃은 무리져 피며 5~10mm 길이의 꽃대를 중심축으로 수십송이의 꽃이 매달린 형태로 핀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각각 5개이다.
귀룽나무는 4월 중순부터 5월초까지 하얀색꽃을 핀다. 꽃은 무리져 피며 5~10mm 길이의 꽃대를 중심축으로 수십송이의 꽃이 매달린 형태로 핀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각각 5개이다.

귀룽나무는 키가 큰 나무다. 높이 10m가 넘고 줄기 둘레도 한 아름이 넘는 나무가 많다. 잎은 어긋나기 형태로 나며 달걀 모양이다. 이른 봄에 나는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상당히 쓴맛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귀룽나무가 있다고 한다. 한국 고유종이라는 것이다. 이름은 서울귀룽나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성장한다. 이 종은 원종인 귀룽나무에 비해 작은 꽃자루가 길이 0.5~2cm로 긴 점에서 식별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귀룽나무는 4월 말~5월 초까지 꽃을 피우고 7월쯤이면 버찌 크기의 열매가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가을이면 까맣게 익은 이 나무의 열매는 새들이 먹기 편한 크기로 익게 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 나무의 열매를 새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나무 이름조차도 ‘유럽의 새버찌’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물론 이 열매는 사람이 먹기도 하는데 떫은맛이 강하다. 그래서 서양에선 열매를 술에 담가 마신다고 한다. 

이 나무의 목재는 가구재, 조각재, 기구재, 공예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어린 가지는 약용이며, 어린 순과 열매는 식용한다. 특히 어린 가지를 꺾거나 껍질을 벗기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데 파리를 쫓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작은 가지를 말린 것은 구룡목이라고 하는데 민간에서는 이것을 끓여 체한 것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이처럼 귀룽나무는 부지런히 봄과 여름을 알리면서 권농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표시한다. 그래서 귀룽나무는 게으르지 않고 정보 제공에 인색하지도 않다. 심지어 자기가 만든 것들을 사람들과 새에게 온전히 다 내놓는 나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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