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글로벌연구실 실장 / 서강대학교 경영학 석사

2023년 들어 전세계 금융시장의 앞날에 안개가 더욱 자욱해졌다.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주요국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인상을 이어가던 가운데 3월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이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일부 은행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은행 시스템 위기를 상기시키며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되고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경기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6월 6.3%에서 올해 3월 4.2%까지 크게 낮아졌고 미국 CPI상승률도 같은 기간 9.1%에서 5.0%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중앙은행의 목표인 2%를 두 배 이상 상회하고 있다. 유로존(3월 6.9%)과 영국(3월 10.1%)도 물가 우려가 여전하다. 더욱이 근원물가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향후 물가경로에 대해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4월 11일 금통위에서 상반기 물가상승세 둔화에 대해 자신감을 보인 반면, 하반기 이후에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미 연준과 ECB도 뚜렷한 물가 둔화세를 확신할 수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4월 11일 IM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제시하며 지난 1월 전망(2.9%) 대비 하향 조정했다. 더불어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부터 시작된 신용경색을 지목했다.

한국은행도 IT 부문의 부진이 지속되며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인 1.6%에 못 미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다만 4월 25일 발표된 국내 1분기 GDP 성장률은 전기비 0.3%로 예상보다는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를 비롯한 IT경기 불확실성이 상존하나, 예상외의 호조를 보이고 있는 중국 경제 회복세가 국내외 경제에는 다소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국은행의 첫 번째 의무는 물가안정, 두 번째가 금융안정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이 발언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중앙은행은 경기와 물가가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물가안정을 우선시하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또는 경기 사이의 균형을 저울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달 12~13일 G20 회원국과 IMF, WB 총회가 연계해 열린 회의에서도 각국 대표들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어떻게 운용돼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나눴다고 한다. 두 갈래 길 사이에서의 선택은 비단 한국은행만의 고민이 아니며 전세계의 공통된 현안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한국은행은 연내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0%에서 동결한 후 내년초 인하 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경기 상황에 따라 연중 정책 선회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미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한은 입장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폭이 현재 역대 최고치와 동일한 150bp까지 벌어져 있고 물가상승세가 목표치에 근접하지 못한 상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미 연준은 5월 3일 FOMC에서 기준금리를 5.25%(상단)로 추가 인상한 후 올해 금리인상 사이클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3월 FOMC에서 제시된 점도표도 한 차례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추세적으로는 미국의 물가압력이 완화되고는 있지만, 근원물가 등에서 보여지는 인플레이션 우려는 아직 여전하다. 미국 3월 근원 CPI 상승률은 5.6%로 헤드라인 물가(5.0%)를 넘어섰다.

다만, 금리인상이 한 차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연준 인사들이 신용경색의 파급효과와 이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FOMC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에서는 은행 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때까지 잠재적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하자는 견해도 제시됐다. 시장에서는 대체적으로 내년초 연준이 금리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나, 만약 은행 위기 등이 연준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해질 경우 그 시기가 빨라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각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하기 때문에 향후 통화정책에 불확실성이 상존하나, 국내외 금융시장은 이미 긴축기조 마무리 기대를 선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국고채 금리는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커질 여지는 있으나, 연중 하향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경기둔화 우려도 금리하방 압력을 더할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연준의 가파른 금리인상에 따른 강달러가 원화 약세를 견인했다면, 올해는 강달러 기조가 완화되면서 원화를 비롯한 주요국 통화가 달러대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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