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와인 품평회 참관기, 블랜딩 와인 많아져
화이트·로제·스위트 와인, 놀랄 정도로 성장

▲ 충북 영동군의 와인생산자들이 자신들의 만든 와인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품평회를 가졌다. 이 행사에는 현직 대학교수와 소믈리에 등이 참여했으며 필자(맨 우측)도 한국와인을 취재하는 기자로 참석했다.
▲ 충북 영동군의 와인생산자들이 자신들의 만든 와인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품평회를 가졌다. 이 행사에는 현직 대학교수와 소믈리에 등이 참여했으며 필자(맨 우측)도 한국와인을 취재하는 기자로 참석했다.

충청북도 영동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포도 산지다. 우리나라 전체 포도 생산량의 10.4% 정도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그렇다 보니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도 40여 곳이 넘는다.

생산자 대부분이 규모가 작은 농가형 와이너리지만, 의미 있게 생산을 늘리고 있는 곳이 30곳에 이를 정도로 영동군은 와인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3일 영동군에서 생산한 137종의 와인을 품평하는 행사가 있었다. 해마다 생산하는 와인의 품질을 외부 전문가로부터 품평을 받고자 여러 해 전부터 진행된 행사로,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시각을 얻기 위해 품평위원의 직군을 좀 더 다양하게 구성하고 숫자도 늘렸다고 한다.

이 행사에는 현직 대학교수와 소믈리에 등이 참석했으며, 필자도 한국와인을 취재하는 기자의 자격으로 품평회에 참여해 모두 68종의 와인과 브랜디를 시음했다.

품평회는 영동 와인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생산자들의 모임인 ‘영동와인연구회’ 자체적으로 진행한 행사다. 더 나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로부터 맛과 향미 등에 대한 조언을 듣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이번 행사의 총평은 한마디로 ‘일신우일신’이다. 해마다 한국와인을 취재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급성장한 모습을 확인해 왔지만, 올해 품평회에서 만난 와인은 전반적으로 수준이 고르게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예년에 비해 여러 포도를 블랜딩해서 양조한 와인이 크게 늘었다는 점도 특이점이었다. 다채로운 향미를 내기 위한 생산자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충북 영동군에서 생산한 137종의 와인과 브랜디를 품평하는 행사가 지난 3일 영동군 와인터널에서 있었다. 사진은 품평을 기다리고 있는 로제와인과 브랜디이며, 품평회는 블라인드로 진행됐다.
▲ 충북 영동군에서 생산한 137종의 와인과 브랜디를 품평하는 행사가 지난 3일 영동군 와인터널에서 있었다. 사진은 품평을 기다리고 있는 로제와인과 브랜디이며, 품평회는 블라인드로 진행됐다.


레드와인의 경우 타닌감을 주기 위해 캠벨얼리 품종에 산머루를 섞어서 양조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화이트와 로제와인은 그동안 단일품종으로 빚어왔다. 그런데 영동군의 생산자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이 와인에도 적용하고 있었다.

우선 화이트와인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은 ‘청수’다. 영동군도 상큼한 신맛을 가진 청수를 주로 사용해 왔지만, 올해는 샤인머스캣과 캠벨, 머스캣 알렉산드리아, 탄오레드 등의 품종을 10~50% 정도 섞어서 양조한 와인이 많아졌다. 사과와인에서도 부사품종에 홍로를 섞어서 만든 와인도 등장했다. 그만큼 블랜딩의 묘미를 생산자들이 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제와인도 마찬가지다. 캠벨얼리 100%에서 탈피해 샤인머스캣과 청수, 옥랑, 머스캣 알렉산드리아를 일부 혼합해서 양조하고 있었다. 잘 만든 로제와인의 경우 캠벨얼리 품종의 장점인 장미 향이 잘 살아 있었다. 청수 품종을 브랜딩한 로제와 샤인머스캣과 캠벨로 만든 로제는 산미 중심의 발란스가 매력적이었다. 

레드와인은 꾸준히 좋아진 영역이다. 특히 드라이한 맛의 와인은 와이너리들이 자존심처럼 여기면서 역량을 집중시킨 영역이다. 아이스공법, 산머루와의 브랜딩 등 와이너리의 고유한 방식으로 수준 있는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이번 품평회에서도 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전은 단맛을 가진 레드와인에 있었다. 그동안 캠벨로 빚은 스위트 레드와인은 단맛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더는 단맛만을 가진 플랫와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 맛의 변화가 많았다.

여전히 캠벨얼리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일부 와이너리들은 산머루, 아로니아, 복분자 등을 블렌딩하고 있었다. 맛도 단맛에 더해 신맛을 살려서 와인의 구조감이 더욱 풍부해진 느낌이다. 그만큼 맛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품평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와인의 맛이 골고루 좋아졌다는 사실과 블렌딩한 와인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현재 영동군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의 30% 정도가 블렌딩이라는 말도 나온다.

블랜딩을 통해 향미의 다채로움을 찾은 와이너리들은 더 많은 블랜딩 와인을 만들 것이다. 이와 함께 샤인머스캣 재배가 급증하면서 샤인머스캣을 활용한 와인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영동군에 처음 포도가 전해진 것은 지난 1967년의 일이라고 한다. 이때 처음 캠벨얼리 품종이 들어왔고 판매를 목적으로 포도원이 만들어진 것은 1972년경이며, 마을 단위에서 작목반이 형성된 것은 1977년 전후라고 한다.

즉 영동에 캠벨 포도가 들어온 지 56년, 과수원이 만들어진 지는 50년이 막 넘어섰다.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처럼 짧은 양조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영동와인의 품질은 외국와인과 어깨를 겨를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이번 품평회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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