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꽃으로, 가을엔 붉은색 열매로 눈길 끌어
한반도 전역에서 성장, 음지 안 가리고 잘 자라

▲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피는 꽃들이 주로 흰꽃이다. 꽃은 배꽃을, 그리고 열매는 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팥배나무다. 그렇다고 배나무와는 관계가 없다. 지금 전국의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사진은 관악산에서 지난주에 만난 팥배나무의 꽃이다.
▲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피는 꽃들이 주로 흰꽃이다. 꽃은 배꽃을, 그리고 열매는 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팥배나무다. 그렇다고 배나무와는 관계가 없다. 지금 전국의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사진은 관악산에서 지난주에 만난 팥배나무의 꽃이다.

2023년 5월 6일 9: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5월 북한산과 관악산에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나무는 팥배나무다. ‘팥배’라는 이름이 뭔가 이질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나무는 ‘팥’과 ‘배’의 특징을 잘 가지고 있는 나무다.

그것도 식물의 핵심 기관인 꽃과 열매가 그렇다. 열매는 팥을, 꽃은 배꽃을 닮았다는 것이다. 배꽃을 닮았다고 배나무와 친연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 나무는 ‘마가목속’에 속한 식물이다. 

팥배나무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본 나무다. 5월에는 꽃을 10월 이후에는 붉은색 팥처럼 생긴 열매를 나뭇가지에 수천 개씩 매달고 있는 나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중부지역은 물론 남부지역의 산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다. 게다가 서울시 서초구의 사임당로에는 가로수로도 식재돼 있어서 관심만 있다면 나무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나무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서 기억을 못 할 뿐이다. 

귀룽나무에서 시작하는 흰 꽃의 퍼레이드는 5월 들어 팥배나무와 덜꿩나무, 말채나무, 노린재나무 등에 바통을 넘기게 된다. 바로 이 시절이 그렇다.

높이 15~20m까지 자라는 큰키나무이므로 흰 꽃을 가득 펼치면 나무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꽃은 장미과의 나무들이 다 그렇듯 다섯 장의 꽃잎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수술과 암술이 도드라져 보인다.

꿀벌 등의 곤충이 모르고 옆을 스쳐 지나가도 바로 꽃가루가 묻을 만큼 도출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소박하면서도 요염한 모습이다. 꽃이 작아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팥배나무의 꽃은 깔때기 모양의 꽃차례가 두세 겹으로 이어지며 꽃의 크기는 어른의 새끼손톱만 하다. 이렇게 5월 한 때 산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에는 그냥 나무 중 하나일 뿐이다. 모든 나무가 녹색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 팥배나무는 가을에 붉은색의, 팥 크기만한 열매를 맺는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보는 것은 꽃이 만개한 나무를 보는 것만큼 장관이다. 특히 잎이 다진 초겨울의 나무는 더 그렇다. 사진은 창경궁의 팥배나무 열매다.
▲ 팥배나무는 가을에 붉은색의, 팥 크기만한 열매를 맺는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보는 것은 꽃이 만개한 나무를 보는 것만큼 장관이다. 특히 잎이 다진 초겨울의 나무는 더 그렇다. 사진은 창경궁의 팥배나무 열매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초록의 팥배나무 열매는 꽃보다 화려한 붉은색의 열매로 변신을 시도한다. 특히 서리가 내리고 단풍도 다 떨어진 겨울 초입의 팥배나무는 팥 크기의 작고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이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무채색으로 바뀐 숲에서 붉은색으로 치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눈에 잘 띄겠는가. 이 붉은색 열매는 새들의 먹이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나무가 새들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새들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이 나무가 중국에서는 ‘목민관’의 소명 의식을 비유할 때 사용됐다. 《시경》에는 ‘소남·팥배나무’라는 시가 전해지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무성한 팥배나무를/자르지도 베지도 말라/소백께서 지낸 곳이니라/무성한 팥배나무를/자르지도 꺽지도 말라/소백께서 쉬었던 곳이니라/무성한 팥배나무를/자르지도 휘지도 말라/소백께서 머물렀던 곳이니라”

이 시에 등장하는 소백은 주나라의 기초를 주공과 함께 세운 사람이다. 연나라의 시조이며, 주 문왕 때부터 강왕까지 4대에 걸쳐 선정을 베푼 인물이다.

그런 소백이 지낸 곳이자 쉬었던 곳, 그리고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니 자르지 말라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소백이 각 고을을 돌 때마다 팥배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 아래서 송사를 판결하고 정사를 봤다고 한다. 또한 모든 백성을 적재적소에서 일하도록 해서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죽은 뒤 그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팥배나무를 귀중하게 돌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감당지애(甘棠之愛)’다. 여기에서 감당은 팥배나무의 한자 이름이다. 

팥배나무는 꽃과 열매가 볼거리가 되므로 정원수나 공원수, 그리고 일부 지자체에서 가로수로도 활용하고 있다. 꽃은 아카시나무 등과 함께 대표적인 밀원식물이라고 한다. 목재는 가구나 공예에 주로 쓰인다.

또한 예전에는 나무껍질을 염료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팥배 열매는 서리가 내린 뒤 신맛이 조금 둔해지면 단맛이 생긴다고 한다. 이 열매를 말려 차로 마시거나 술을 담가 마시기도 한다. 해열, 강정, 혈당조절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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