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주·증류주 모두 숙성 통해 맛의 균형 잡아
우리 술도 고급화 위해 시간에 더 많은 투자해

▲ 모든 숙성과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발효음식과 술은 숙성을 통해 더 좋은 맛을 낸다. 사진은 경북 안동의 박재서안동소주의 숙성실이다. 오크통 안에는 소주가 숙성 중이다.
▲ 모든 숙성과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발효음식과 술은 숙성을 통해 더 좋은 맛을 낸다. 사진은 경북 안동의 박재서안동소주의 숙성실이다. 오크통 안에는 소주가 숙성 중이다.

2023년 06월 10일 13: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먹는 음식치고 오래 둬서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식은 신선할 때 먹는 것이 가장 맛도 좋고 영양분도 제대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두면 산소를 만나 음식이 산화되거나 다양한 세균의 공격을 받아서 이취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맛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산화 그 자체가 우리 몸에 직접적인 위해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방의 산패는 물론 산화된 단백질을 섭취하면 우리 몸에서 활성산소가 만들어지고 이는 다양한 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식재료일수록 가장 싱싱한 상태에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숙성’이라는 맛에 사람들의 입맛이 깊게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 발효시켜 먹었던 김치와 장류, 홍어회와 같은 음식 이외에 신선함을 최고 덕목으로 치던 육류마저 ‘에이징’이라는 과정을 거친 고기를 더 쳐주고 있으며, 회도 ‘숙성회’를 찾는 미식가들이 늘고 있다. 

한자로 숙성(熟成)은 ‘익혀서 완성한다’라는 뜻이다. 다 된 것을 더 익혀서 맛을 좋게 한다는 의미다. 발효도 그렇고 숙성도 그렇다. 두 과정 모두 미식의 다양성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술이라는 영역에서는 ‘숙성’은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잘 숙성된 술이 더 좋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에 있는 성분 중 날카롭고 튀는 성분이 사라지고 차분하게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의 간장과 된장은 대표적인 발효음식이다. 사진은 충북 청주에 있는 조정숙 명인의 숙성 항아리다. 100년된 씨간장을 활용해 만들고 있는 간장과 된장이 숙성되고 있다.
▲ 우리나라의 간장과 된장은 대표적인 발효음식이다. 사진은 충북 청주에 있는 조정숙 명인의 숙성 항아리다. 100년된 씨간장을 활용해 만들고 있는 간장과 된장이 숙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술 막걸리와 약주는 발효가 끝나면 바로 음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알코올 맛이 두드러지고 술맛을 이루는 다양한 맛들의 발란스도 전혀 잡히지 않아 좋은 맛을 내지 못한다. 특히 알코올 맛이 먼저 고개를 들어 입맛을 거스른다. 이런 맛은 와인도 마찬가지다. 날카롭고 텁텁하고 독한 타닌과 신맛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맛의 균형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우리 술과 와인 등 발효주는 일정한 기간 숙성 과정을 거친 뒤 마시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좋은 발효주를 만드는 양조장들은 발효가 끝난 술을 항아리나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와인은 오크통에서 미생물에 의한 후발효와 숙성이 동시에 이뤄진다. 그래서 타닌이나 신맛이 다듬어져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우리 술도 마찬가지다. 항아리나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 안에서 알코올 향이 가라앉고 꽃 향과 여름 과일 향 등이 올라오게 된다.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저분자 물질이 줄어들어 생기는 맛과 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증류주는 숙성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스키와 코냑 류의 브랜디는 빈티지를 표시하고 있다. 최근 몇몇 증류소에서 빈티지를 표시하지 않고 술을 출고하고 있지만, 증류주는 예외 없이 오래 숙성된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게다가 스코틀랜드에 있는 증류소에서는 위스키 맛의 70~80%가 오크통에서의 숙성에 달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의 바이주도 항아리에서 숙성한 술을 고급으로 치는 것을 보면 모든 증류주가 그런 듯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증류소주도 최근에는 빈티지를 표시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고급주임을 ‘숙성’의 흔적에서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에 붙잡혀 있던 증류주가 더 맛있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위스키의 경우 ‘천사의 몫’에서 나타나게 된다. 오크통에서 위스키 원액이 휘발되면 오크통 안에서 숙성 중인 술의 도수는 다소 낮아진다. 알코올은 날아가고 술 본연의 맛은 더욱 응집된다. 여기에 오크통에서 오는 향까지 입혀지니 더 맛있어지는 것이다.

특히 시간이 오래될수록 물 분자와 알코올 분자의 결합이 진해져 더욱 안정적인 술맛을 낸다. 우리 증류소주도 항아리에서 숙성하면 술이 지닌 맛이 더욱 응축된다. 항아리의 통기 과정에서 이취를 내는 물질은 사라지게 되고 알코올은 더욱 안정화된다. 특히 높은 도수의 술일수록 숙성의 맛은 더욱 진해진다. 그래서 고도주를 더욱 맛있게 느끼는 까닭이기도 하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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