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빈산·아황산’ 일절 안 넣은 내츄럴와인
가당 않고도 알코올 도수 14% 내는 양조장

▲ 예인화원의 고은혜 대표는 포도원 집 딸로 태어나 할머니 어깨너머로 와인 제조법을 배워 인생 2모작은 와이너리로 개척하고 있다. 내츄럴와인 붐이 불면서 와이너리의 명성도 높아지고 있는 곳이다.
▲ 예인화원의 고은혜 대표는 포도원 집 딸로 태어나 할머니 어깨너머로 와인 제조법을 배워 인생 2모작은 와이너리로 개척하고 있다. 내츄럴와인 붐이 불면서 와이너리의 명성도 높아지고 있는 곳이다.

국산 와인의 주산지가 아닌 곳에서 입소문만으로 와인 맛을 인정받는 곳이 있다. 그것도 혼자서 화학첨가물 없이 ‘자연 그대로를 담은’ 와인을 빚는 곳이다. 경북 경주에서 유일하게 와인을 만드는 ‘예인화원’이 그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이 와이너리의 대표이자 일꾼인 고은혜(62)씨가 양조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포도원 집 딸로 태어나 자연스레 할머니 어깨 너머로 술 빚는 방법을 배운 덕분에 인생 2막을 양조장으로 열게 된 것이다. 

그의 와인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채식주의자 모임을 열면서 취미로 빚은 와인을 도반들에게 소개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1996년이니 제법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이 시절은 아직 국내에 비건 와인은 물론 내츄럴 와인 등이 소개되기 전이다.

고 대표는 다른 사람들에 앞서 내츄럴 와인을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할머니(김갑이씨)가 그렇게 술을 빚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김해농전을 졸업한 할아버지 고종호씨는 포항에 있는 대규모 포도원에서 일했고, 그녀가 태어날 당시에는 고향 창원에서 포도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경남 창원(마산과 창원)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오기 전인 1970년대까지 이곳은 대표적인 포도 산지였다. 지금은 기후변화 때문에 경북 영천과 충북 영동 등으로 포도 산지가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마산과 창원의 포도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할머니는 팔다 남은 포도를 자연스레 포도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방법은 포도를 으깨 항아리에 넣는 것이었다. 그러니 화학첨가물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인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자연이 주는 환경에 맞춰 빚은 포도주였다. 고 대표는 할머니의 비법을 따라서 포도주를 양조한 것이다. 

경주에 내려온 지난 2008년에도 그랬다. 경주 남산의 풍광이 좋아 주변에 터를 잡아 새로 집을 지을 때도 양조장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가 모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그의 포도주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일에 얽매이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 경주 남산에 있는 ‘예인화원’ 와이너리에서는 화학첨가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예인화원에서 생산하고 있는 레드와인(남산애)와 로제와인(가을빛)이다.
▲ 경주 남산에 있는 ‘예인화원’ 와이너리에서는 화학첨가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예인화원에서 생산하고 있는 레드와인(남산애)와 로제와인(가을빛)이다.


하지만 주변의 수요가 늘면서 상업 양조를 고민하게 되고 결국 경북 영천시에서 진행하는 와인학교를 1기로 수료한다. 그리고 3년의 준비 끝에 2011년 양조장 면허를 취득하면서 ‘예인화원’이라는 와이너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예인화원의 와인은 자연 그대로의 와인이다. 상업양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생산량도 많지 않다. 1년에 3,000병 정도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만드는 주종은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그리고 로제와 주정강화와인, 브랜디 등 5종이다. 그만큼 일이 많다. 게다가 쉽게 양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첨가물은 물론 설탕 가당 마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와인 양조철학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탕 가당 없이 알코올 도수 13~14도를 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과일 당도의 절반만큼 알코올 도수가 나온다는 자연의 법칙을 거역할 힘이 고 대표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고 대표가 선택한 것은 시간을 인내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9월 초부터 포도를 수확하지만, 그는 11월까지 수확을 늦춘다. 포도 알맹이가 말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당도가 높아지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양조에 들어가기 전에 포도를 으깰 때도 그는 착즙기를 쓰지 않는다. 착즙기를 돌릴 때 쓰는 약품을 피하기 위해서다.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뤄지고, 최대한 불편하게 공정을 관리한다. 이것이 자연에 맞는 섭생의 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츄럴 와인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면서 예인화원의 와인도 덩달아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 와인은 레드와인 ‘남산애’이다. 캠벨얼리와 MBA, 산머루를 블랜딩해서 빚는다. 그런데 해마다 비율이 다르다고 한다. 비율을 맞추기보다 좋은 포도를 더 쓰는 것이 더 좋은 와인을 만드는 비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을 자연에서 답을 구하는 보기 드문 양조인이다. 

이런 고집스러움이 ‘아시아와인트로피’에서 받은 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최소 3년을 숙성시키는 그의 와인은 2018년 금상(2013년산)을, 2019년 은상(2014년산)을 받은 바 있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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