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에 피는 하얀 꽃, 발걸음 잡아채는 꽃향기
말린 열매는 강장, 지혈, 허약체질 개선에 쓰여

▲ 도시의 가로수 빈 공간이나 단지와 단지를 나누는 생울타리로 많이 쓰이는 쥐똥나무는 늦봄에 하얀 꽃을 피운다.
▲ 도시의 가로수 빈 공간이나 단지와 단지를 나누는 생울타리로 많이 쓰이는 쥐똥나무는 늦봄에 하얀 꽃을 피운다.

생울타리는 자연의 생명 활동을 건드리지 않고 공간을 나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효율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적게 사용하는 공장제 울타리를 세우려 하겠지만, 죽은 나무나 철재로 만든 구조물에서 생명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자연의 모습처럼 생명을 가진 울타리를 갖고 싶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나무로 울타리를 세우려고 한다.

이런 목적으로 심는 나무 중에 흰색의 향기로운 꽃을 가진 나무가 하나 있다. 이름은 좀 그렇지만, 향기나 꽃의 생김새만은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끌 만큼 매력적이다.

도시에선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의 빈 곳을 채워 공간을 구획할 필요가 있을 때, 아니면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로 심은 철제울타리의 삭막함을 가리고 싶을 때 이 나무를 심는다. 시골에선 담벼락을 대신해 집의 울타리가 필요할 때 이 나무를 심기도 한다. 이름은 ‘쥐똥나무’다. 

나무의 생김이 쥐와 닮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향기로운 꽃의 모양이 그럴 리는 더욱 없다. 다만 10월부터 검게 익어가는 이 나무의 열매가 쥐의 배설물을 닮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별명이라면 모를까. 실제 이름으로 존재감 떨어지는 이름을 붙이다니, 참 그렇다. 외모에서 특징을 잡아 별명을 붙이는 유별난 사람들의 호기심을 탓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같은 나무를 보고 북한에서는 검은 콩을 닮았다고 해서 ‘검정콩알나무’ 혹은 ‘검정알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무에 목격(木格)이 있다면 이 이름을 더 좋아할 듯하다. 

하지만 이 나무는 사람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자연의 일부로 제 역할을 다한다. 다 자라도 어른의 키를 넘지 않으며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조명을 받지 못하지만, 때만 되면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심지어 다 익으면 새까만 열매를 새들의 먹이로 내놓는다.

심지어 사람들의 욕심으로 나무를 이리저리 전정해도 지칠 줄 모르고 가지를 살려내는 모습은 이 나무를 천상 생울타리용 나무로 여기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궁궐의 우리 나무》를 쓴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자동차 매연에 찌들어버린 대도시의 도로와 소금 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도 거뜬히 버티므로 생울타리로 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쥐똥나무를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환경적응력이 뛰어나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이 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 

▲ 꽃은 크지 않지만, 향기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챌 만큼 좋다. 가을에 검게 익는 열매가 쥐똥같다고 해서 이름이 쥐똥나무다.
▲ 꽃은 크지 않지만, 향기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챌 만큼 좋다. 가을에 검게 익는 열매가 쥐똥같다고 해서 이름이 쥐똥나무다.

쥐똥나무의 꽃은 마주 나는 잎의 끝부분에서 나온다. 이르면 5월, 보통은 6월에 라일락처럼 원추형의 꽃차례가 피기 시작한다. 작은 손톱 크기의 꽃들이 10~20개 정도 모여 원뿔 모양으로 꽃대가 만들어지고 꽃의 모양은 네 갈래로 나뉜 꽃부리조각으로 인해 십자형을 취하고 있다. 이 꽃은 여름을 맞으면서 떨어지고 달걀모양의 녹색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꽃은 그해에 새로 돋은 가지에서 피어난다. 그러니 화단을 가꿀 목적으로 전정을 하고 싶다면 꽃이 피고 난 다음에 자르도록 하자. 자를 댄 듯 반듯한 나무를 보기 위해 향기로운 꽃향기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쥐똥나무는 원래 겨울이 되면 잎을 떨구는 나무다. 그런데 날이 춥지 않으면 잎을 다 떨구지 않고 푸른 잎사귀를 단채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즉 반상록나무가 되는 것이다. 남쪽 지방에는 쥐똥나무와 많이 닮은 광나무가 많이 자란다. 이파리의 크기가 차이가 나지만, 확실한 차이점은 광나무는 늘 푸른 나무라는 점이다. 

한편 쥐똥나무의 열매는 겨울을 보내는 새들의 주요한 먹이이지만, 사람들은 이 열매를 햇볕에 말려 약재로 사용했다. 주로 강장, 지혈, 그리고 허약체질 강화 등에 썼다고 한다. 또한 타박상이나 화상 상처나 설사 등에도 이 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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