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잘 받고자 물 많은 계곡에서의 경쟁 피해
전국에서 골고루 생장…소나무 다음으로 많아

신갈나무의 씨앗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토리다. 도토리는 땅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새싹을 내민다. 다람쥐가 먹이로 감춘 도토리 중 먹이가 되지 않은 도토리는 생명의 새싹을 내밀게 된다. 사진도 그런 신갈나무 도토리에서 내민 새싹이다.
신갈나무의 씨앗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토리다. 도토리는 땅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새싹을 내민다. 다람쥐가 먹이로 감춘 도토리 중 먹이가 되지 않은 도토리는 생명의 새싹을 내밀게 된다. 사진도 그런 신갈나무 도토리에서 내민 새싹이다.

모든 식물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살아남기 위해 억척같이 노력한다. 산길의 돌 틈이나 도시의 아스팔트 깨진 틈에 한 줌도 안 되는 흙만 있어도 생명은 깃들고, 한 번 자리한 생명은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린다. 

그렇다고 식물들이 모든 조건에서 생존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각각 자기가 살 곳을 정확히 찾아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조건이 맞지 않은 곳에 다다른 씨앗은 더 이상 생명 활동을 하지 않는다. 진화의 과정에서 식물들은 최적의 생존조건에서 살아남아야 지속적인 자손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연유다. 

오늘의 주인공 나무인 신갈나무는 낮은 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역에 생존하지만, 산의 능선부나 정상부 등 제법 높은 지역에서만 잘 자란다. 그래서 물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계곡이나 평지에서 이 나무는 찾을 수 없다. 건조한 능선이나 정상부가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참나무 6형제 중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참나무 중에 가장 낮은 곳에서 잘 자라는 나무는 갈참나무와 졸참나무이며 상수리나무와 굴참, 그리고 떡갈나무는 그보다 높은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땅을 바라보며 거친 경사면을 오르다 하늘 한 번 보면서 심호흡하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신갈나무다. 이런 곳은 물이 적어 건조하고 겨울이면 바람도 많고 평균온도도 무척 낮아 추운 곳이다. 딱 봐도 살기에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얻는 반대급부가 있다. 다른 나무들과 힘들여 경쟁하면서 자리다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햇빛은 생명 활동의 시작이자 끝이다. 모든 생명체가 햇빛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물이 많으면서 햇빛이 잘 드는 곳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햇빛을 더 받기 위해 키를 먼저 키우려는 식물들의 노력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신갈나무는 소나무 다음으로 많은 나무다. 이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경쟁을 좋아하지 않아 물 많은 계곡에선 찾을 수 없는 나무다. 산의 능선부에서 정상부에 주로 자라고 있어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다. 사진은 강원도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만난 신갈나무다.
신갈나무는 소나무 다음으로 많은 나무다. 이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경쟁을 좋아하지 않아 물 많은 계곡에선 찾을 수 없는 나무다. 산의 능선부에서 정상부에 주로 자라고 있어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다. 사진은 강원도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만난 신갈나무다.

신갈나무의 주 서식지는 이런 경쟁을 피하고 마음 편하게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이런 편안함을 얻기 위해선 몸집을 포기해야 한다.

좋은 조건에서 자란 신갈나무는 전남 장성 백양사 입구의 갈참나무 무리처럼 두 아름 정도는 족히 넘을 정도로 크게 자란다. 하지만 바람 많은 정상부의 신갈나무는 키가 작을 수밖에 없다. 겨울 모진 바람을 받으면서 제대로 자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참나무여서 그런지, 신갈나무는 늦은 봄까지도 신록의 이파리를 보여준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연두색을 버리고 여름의 짙은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는데도 신갈나무는 여전히 봄빛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점이 예뻐 보였을 것이다. 박상진 교수는 《우리 나무의 세계》에서 다른 참나무 형제들보다 늦게까지 푸릇한 잎을 보여줘서, 새로운(신) 갈나무(참나무)라 해석하며 신갈나무라고 나름의 이름 풀이를 하고 있다. 

물론 민간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는 잎을 신에 깔아 넣을 수 있어서 신갈나무라고 부른다는 것. 예전 나무꾼이나 산길 걸어야 하는 나그네들이 길을 걷다가 짚신 바닥이 헤지면 신갈나무의 잎으로 바닥을 대신했다고 한다.

떡갈나무 잎은 너무 커서 넣을 수 없지만, 신갈나무의 잎은 짚신에 딱 맞는 크기다. 그래서 떡갈나무 잎은 시루떡에 찔 때 시루에 까는 잎으로 주로 쓰였고, 신갈나무는 나그네들의 짚신 바닥에 주로 깔렸다.

그렇게 우리와 인연을 맺은 나무다 보니 짚신을 신었던 시절까지 신갈나무는 우리 민족과 매우 친밀했다. 하지만 지금은 참나무 6형제 중에서도 가장 낯선 나무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신갈나무가 참나무 중에 가장 많다는 것 하나만은 기억하자. 경쟁을 피해 일부러 척박한 곳을 선택한 이 나무의 전략도 생각해보자. 햇빛이라도 많이 보려는 신갈나무의 선택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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