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시장 77% 점유했던 막걸리, 지금은 겨우 5%대
가양주 전통 계승하면서 젊은 층 겨냥한 신상품 잇달아

▲ 쌀과 누룩으로 빚은 고급 막걸리가 지역특산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면서 막걸리 시장이 풍성해졌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5%에 불과하다. 1970년대의 점유율과 비교하기에도 초라한 수치다.
▲ 쌀과 누룩으로 빚은 고급 막걸리가 지역특산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면서 막걸리 시장이 풍성해졌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5%에 불과하다. 1970년대의 점유율과 비교하기에도 초라한 수치다.

저녁 식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디너’가 처음부터 그 뜻을 지닌 것은 아니다. ‘배고픔을 없앤다’ 정도의 뜻을 지닌 단어가 시기에 따라 점점 늦은 시간에 행해지는 식사의 한 형태를 뜻하는 단어로 발전한 것이다. 하루에 한두 번 식사하기 힘든 평민들에게도 여유가 생기면서 두 번의 식사 기회가 생기고, ‘출퇴근’이라는 근대적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디너’는 오늘날의 저녁 식사로 자리하게 된다. 즉 경제적 여유가 만든 어의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술의 대표 선수 ‘막걸리’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술의 형태는 물론 위상이 크게 바뀌는 중이다. 100년 전까지 막걸리는 노동주의 대명사였고, 밥을 대신하던 새참의 한 종류였다. 고된 농사일을 버텨내게 해주었던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 안팎이었다. 제대로 빚어 알코올 도수가 17~8% 나온 원주를 그대로 마시면, 노동 그 자체가 불가능했으므로 노동과 새참을 위한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야 했다. 

이 막걸리를 온 국민이 꽤 오랫동안 찾아 마셨던 적이 있다. 적어도 1988년 맥주가 막걸리를 따돌리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974년에는 170만㎘를 생산하며 전체 주류시장의 77%의 점유율을 보이기도 했다. 맥주와 희석식 소주는 합쳐서 겨우 20%대를 유지할 정도로 소비량이 미미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400달러를 겨우 넘어선 상황이었다. 1977년경 1000달러를 넘어섰으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소비되었던 막걸리는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시대를 맞는 동안 급전직하를 거듭하며 맥주와 희석식소주와 반대의 경우에 처하게 됐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보다 못한 처지로 내몰렸다. 5~6% 정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 정부는 ‘막걸리 빚기’를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향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터다지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막걸리’는 3만5000달러 시대에 걸맞는 우리 민족의 술로 자리할 것이다.
▲ 정부는 ‘막걸리 빚기’를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향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터다지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막걸리’는 3만5000달러 시대에 걸맞는 우리 민족의 술로 자리할 것이다.

막걸리는 흔히 ‘지금 막 걸렀다’ 또는 ‘막(마구) 걸렀다’는 술의 채주 과정과 형태를 보고 만든 단어로 이해한다.

막국수, 막사발, 막소주, 막노동 등 ‘막’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단어들은 각각의 사물에 투영된 서민적 풍모 때문에 원래의 대상이 지닌 뜻보다 격을 낮춰 보게 만든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국수와 사발, 소주, 노동 등의 명사에 ‘막’이라는 부사가 붙었다. 그러나 막걸리는 ‘막’과 ‘걸리’가 결합한 단어다. ‘걸리’는 명사보다는 ‘거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봐야 한다. 즉 ‘막’이라는 단어가 붙어 앞서 예를 든 명사들과 유래가 비슷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둘은 탄생 배경이 다른 단어로 봐야 한다. 

단어는 시대를 반영하게 되어있다. 더 정확히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사고를 반영하게 되어있다. ‘광기’라는 단어가 중세 시대에는 일종의 예지적 재능으로 해석됐지만, 근대 이후 이성이 주목받는 시대에는 정신적·윤리적 결함을 상징하게 된다. 특히 광인으로 분류되는 순간 그 사람은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50년 전 우리의 국민소득이 갓 400달러를 넘어섰던 순간, 막걸리는 가난해서 마실 수밖에 없는 술이었지만, 3만5000달러 시대의 막걸리는 가난해서 배고픔 때문에 마시는 술은 더는 아니다. 

여전히 저렴하게 만드는 막걸리가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긴 하지만, 값비싼 국내산 쌀과 누룩으로 빚으면서 인공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술들이 십수 년 전부터 만들어지면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00년 전 가양주 전통을 이어받은 술들이 속속 복원되고 재현되면서 우리 술 시장이 풍요로워지고 있다. 게다가 젊은 MZ세대의 감성에 맞게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막걸리들도 하루가 멀다고 시장에 발표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저가의 막걸리를 제외한 전통주와 전통주류의 판매액이 160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체 시장의 1%를 드디어 넘어선 것이다.

더디게 오고 있지만, ‘손으로 직접’ 빚은 술들이 들어간 정성만큼 조금씩 대우받고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물론 겨우 낮은 고개 하나를 넘은 것이다. 이제는 입맛에 맞는 술도 중요하지만, 술의 품질까지 높이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우리 술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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