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배롱나무·연꽃과 함께 대표적인 여름꽃
귀화식물인데도 ‘이무기 전설’까지 만들며 토착

▲ 백일홍은 대표적인 여름꽃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이며, 그래서 우리에게는 귀화식물이다. 배롱나무와 함께 백일홍이라 불리는데, 차이를 두기 위해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 부른다.
▲ 백일홍은 대표적인 여름꽃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이며, 그래서 우리에게는 귀화식물이다. 배롱나무와 함께 백일홍이라 불리는데, 차이를 두기 위해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 부른다.

태풍으로 한풀 꺾였지만, 복더위는 한창이다. 그래도 입추가 지난 만큼 아침 바람은 서늘하다. 아스팔트가 녹을 정도로 뜨거운 햇볕, 얼마나 내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비, 그리고 뿌리를 송두리째 뽑을 기세로 부는 바람. 올해 여름을 정의할 수 있는 기후 3총사가 아닌가 싶다. 이 날씨에도 식물은 꽃을 피우고 나뭇잎을 키우고, 그리고 열매를 살찌운다. 

여름꽃의 대명사는 백일홍이다. 흔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말하지만, 이 꽃은 열흘이 아니라 백일을 핀다고 한다. 물론 피어있는 기간이 그런 것이지 꽃 한 송이가 백일을 피는 것은 아니다. 꽃송이가 계속 올라오면서 피고 지기를 계속하면서 백일처럼 긴 시간 동안 꽃 피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백일홍이라 부르면 두 종류의 식물이 아는 체를 하게 된다.

나무 백일홍(목백일홍)과 풀 백일홍이 있기 때문이다. 목백일홍은 차령산맥 이남 지역의 따뜻한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풀 백일홍은 한반도 이남 지역에서 피는 1년생 초본식물로 강렬한 원색의 꽃 색깔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런데 두 식물 모두 백일홍이라 불리는 까닭은 꽃피는 기간이 그만큼 길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백일홍 이외에 능소화, 수국, 연꽃, 수련, 무궁화 등의 여름꽃들도 모두 개화기간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모든 꽃송이가 길게 꽃피우고 싶겠지만, 그 꿈은 여름꽃의 몫이라도 되는 듯 이 식물들은 7~8월 내내 꽃송이를 열고 있다. 

▲ ‘이무기 전설’이 있을 만큼 우리 민족에게도 사랑받으며 토착화한 백일홍. 사진은 배롱나무가 유명한 전남 담양군의 명옥헌 주변에 있는 백일홍이다.
▲ ‘이무기 전설’이 있을 만큼 우리 민족에게도 사랑받으며 토착화한 백일홍. 사진은 배롱나무가 유명한 전남 담양군의 명옥헌 주변에 있는 백일홍이다.

오늘의 주인공 ‘백일홍’의 원산지는 멕시코라고 한다. 즉 우리 눈으로 보면 이 꽃은 귀화식물이다. 게다가 정확하게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식물은 근사한 전설을 하나 갖고 있다. 많은 꽃과 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탄생 전설이다. 

한 바닷가 마을에 사람을 해치는 목이 셋이나 되는 이무기가 있었다. 이무기의 해악을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처녀를 제물로 바쳐왔다. 이때 한 사내가 나타나 괴물을 물리치겠다고 길을 나선다. 이무기를 해치우면 흰 깃발을,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걸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00일의 시간이 흘렀다. 이무기를 물리친 사내는 흰색 깃발을 걸고 귀환했으나 이무기를 죽이는 과정에 피가 깃발을 물들였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를 기다리던 처녀는 붉게 물든 깃발을 보고 자결하게 되고, 그녀의 무덤가에선 붉은색의 백일홍이 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백일홍의 꽃말은 ‘기다림과 순결’이 되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전설이다. 하지만 귀화식물인 백일홍에 이 같은 전설이 깃든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게다가 이 전설은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테세우스의 이야기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미노타우로스의 제물로 아테네의 젊은이를 제물로 바쳐왔다는 것과, 이를 물리치기 위해 젊은 영웅이 등장하고 그의 귀환을 알리는 깃발이 바뀌어 결국 기다리는 사람은 비극적인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이 모두 그렇다.  

어찌 됐든 식물에 이처럼 비극적인 사연이 담겨 있게 되면 보는 이의 마음도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만큼 백일홍이 애잔하게 느껴질 것이다. 뙤약볕에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제 색과 모양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럴 것 같다. 

여름꽃 백일홍은 공원이나 정원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초본류 여름꽃 중에 가장 강렬한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화기간도 길어서 조경에 도움이 되는 것도 백일홍을 심는 까닭일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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