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허술한 심사
무모한 수주
예고된 실패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때문일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금융사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처한 현실이다. PF는 말 그대로 프로젝트 자체를 담보로 하는 금융기법. 금융사가 특정 사업의 사업성과 장래의 현금흐름(cash flow)을 보고 자금을 지원한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업주의 신용이나 물적담보에 기반하지 않는다. 사업성을 평가해 돈을 빌려주고 사업이 진행되며 얻어지는 수익으로 대출금을 돌려받는 구조다. 선진국에서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석유, 탄광, 조선, 발전소, 고속도로 건설 등에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개발 관련 사업에서 주로 활용된다. 

부실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가 심각성을 일깨운다.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잔액은 133조1000억원. 1분기 대비 1조5000억원 늘어났다. 2020년 말 92조5000억원이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2021년 말 112조9000억원, 2022년 말 130조3000억원, 2023년 3월 말 131조6000억원 등으로 증가세가 이어진다. 

연체는 고공행진. 부동산 시장 침체로 수익성과 자금 회수에 문제가 생긴 부동산 PF 사업장이 늘며 연체율이 치솟는다. 금융권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올해 6월 말 기준 2.17%를 기록했다. 지난 3월 말 2.01%보다 0.16%포인트 올랐다. 연체율은 지난해 말 1.19%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다. 

황금알 낳는 거위 
미운 오리 새끼로 

업권별로는 증권사의 PF 연체율이 가장 높다. 17.28%에 이른다. 3월 말 15.88% 대비 1.40%p 뛰었다. 같은 기간 은행 연체율은 0에서 0.23%로 상승했다. 보험은 0.07%포인트(0.66%→0.73%) 저축은행은 0.54%(4.07%→4.61%) 상호금융은 1.02%포인트(0.10%→1.12%) 올랐다.

위기설이 나돈다. 정부는 극구 부인한다. 부동산 PF 금리가 오르고 있으나 연체율, 부도율, 주택 미분양률 등의 지표로 볼 때 기우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꺼림칙한지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의 대출 전환, 부실채권 매각, 금융권과 대주단 협약을 통한 PF 사업장 옥석 가리기, 1조 원 규모의 부동산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펀드 등 연착륙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근본적 해결책을 찾으려면 특이한 업무 구조부터 이해해야 한다. PF는 미확정 담보물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로서 리스크 관리가 필수다. 대출금 상환은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원천으로 하므로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현금흐름을 유지·확보하는 데 초점이 집중되며, 정상적 현금흐름을 방해할 수 있는 사항은 모두 리스크로 간주한다. 

그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서는 PF 심사 시 고려할 사항이 많다. 우선 건물이 지어지지 않을 경우의 위험부터 분석해야 한다. PF 특성상 담보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의 미래가치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공사가 건물을 책임지고 준공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분양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도 검토해야 한다. 건물은 건축 개시 후 완공까지 2∼3년 정도 소요된다. 시공 당시에는 완공 후 분양 시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건물이 지어져 담보물이 확보돼도 분양이 안 되면 대출 상환을 위한 현금흐름 확보가 힘들다. 금융사는 이때 건설사의 ‘시공능력’과 ‘상환능력’을 따진다. 시공능력은 ‘기존 실적’과 ‘도급순위’로, 상환능력은 기업 ‘신용등급’으로 확인한다. 

금융사는 사업성 심사 지향
시공사는 무분별한 수주 지양
정부는 정책금융 지원해야

분양이 잘 안 됐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이때 금융사는 사전청약률과 할인분양, 2가지 선행조건을 제시한다. 청약률이 일정 비율을 못 넘으면 대출 승인을 안 한다. 청약은 해지 가능성이 있기는 하나 상품성 판단에서 그만한 게 없다 보니 내거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또 분양실적이 저조해 목표 분양률에 못 미치면 강제적 할인분양을 통해 분양률 제고를 압박한다. 

PF 부실이 부동산 경기 침체 등 외생 변수에만 기인할 리 없다. 금융사 내부 요인에 영향 받는 바도 작지 않다. 프로젝트의 사업성 검토보다 사업주 신용을 중시한 심사체계가 빚은 결과일 수 있다. 미래 현금흐름 파악이 어렵다 보니 시공사의 기존 실적과 도급순위, 신용등급 등을 따져 대출을 결정한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과거 실적과 현상만 들여다본다. 

위험 관리는 주먹구구식. 특히 사전분양률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게 한 상태에서 할인분양까지 강제하는 것은 금융사 입장만 생각하는 불공정 거래다. 금융사가 고객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열위의 팔로워로 취급한다. 건설사야 어찌 되든 대출 원리금만 받아내면 된다는 금융사의 이기적 심보다. 

시공사 잘못도 크다.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다고, 남는 것만 생각하고 리스크 관리는 뒷전이다. 코로나19 이후 저금리에 유동성이 넘치자 건설사는 너도나도 수주 판에 뛰어들어 PF를 이용해 사업지를 늘렸다. 정부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고사 상태의 PF 활성화를 위해서는 만기연장과 금리 인하 등이 필요하다. 요컨대 금융사는 사업성 중심의 심사를 지향하고, 시공사는 무분별한 수주를 지양하며, 정부는 정책금융을 지원해야 PF를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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