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문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 연구위원

얼마 전에 경남은행에서 발생한 수백억원대의 횡령 사고는 부동산 경기 부진과 금리 인상의 여파로 가뜩이나 위축된 시장과 금융권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보따리 하나를 더 얹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업계와 금융당국 사이에선 부동산 PF 시장에 대한 세간의 신뢰가 깊은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건설업계는 불황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인데, 잊을만하면 터지는 횡령 사고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경남은행 사고만 놓고 보더라도 부동산 PF대출이 얼마나 횡령에 취약한 구조를 가졌는지 알 만하다. 또한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막대한 규모의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시스템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급기야 금융당국은 모든 금융권의 부동산 PF 자금 관리 현황을 빠짐없이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특히 이번 긴급 점검에는 그동안 ‘감독 사각지대’란 지적을 누차 받아온 새마을금고도 포함됐다. 그동안 새마을금고 감독 권한은 행정안전부 소관이라 금융당국의 금융권 일제 점검에서 제외됐었다.

부동산 PF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못 심각하다. 3월 말 현재 금융권의 대출 잔액은 무려 131조원에 달하며 연체율 또한 매우 높다. 3월 말 기준 연체율은 2.01%로 지난해 12월 말의 1.19%보다 0.82% 포인트나 올랐다. 그중에서도 증권사의 부동산 PF대출 연체율은 15.88%로 2021년 말 3.71%에 비해 10%포인트 넘게 급등했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의 부동산 PF 연체율도 각각 4.07%, 4.20%로, 둘 다 지난해 말보다 상당폭 증가했다.

불거지는 구조적 문제점

PF대출은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줄 때 자금조달의 기초를 사업주의 신용이나 물적담보에 두지 않고 프로젝트 자체의 사업성이나 미래 현금흐름을 보고 대출하는 금융기법이다.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지고 대출을 갚는 구조이므로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cash flow)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게 되면 곧바로 부실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국내 시행사의 대다수는 규모가 작고 신용등급도 낮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시행사만 믿고 대출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시행사는 시공사(건설회사) 측에 적절한 보강 수단(지급 보증, 채무 인수, 책임 분양 같은)을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는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시행사와 시공사가 분담하는 개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금융기관은 시공사 보증이라는 안전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시공사의 신용보강 비중이 늘어나면서 건설회사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부동산 PF 유동화 증권은 주로 증권사가 신용 보강하여 발행해 왔는데, 올해 들어 증권사의 유동화 증권 발행 규모가 1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이 잘못되면 시행사는 물론 시공사가 같이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도 피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다.

요즘 증권가는 부동산 PF 유동화 증권에 투자한 카드·캐피탈·저축은행·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다. NH투자증권의 한 연구원은 "부동산 경기 저하와 높은 조달금리로 부동산 PF 사업성이 크게 저하돼 일부 금융기관의 관련 자산 건전성 약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라고 분석하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일부 금융기관은 수익성·자본 적정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철저한 심사로 부실 방지해야 

대다수의 PF 사업장에선, 토지소유권 확보 단계부터 인허가 취득과 시공사 참여 등의 역할이 제2금융권에 의한 브리지 론(bridge loan)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한데 분양시장 불황으로 인하여 제2금융권의 '브리지 론'을 제1금융권의 '부동산 PF 본계약'으로 전환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때문에, 기존 대출 연장을 통하여 연명하기에 급급한 사업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브리지 론의 특성상 만기가 길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 부실로 직행할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건설 현장의 실상은 밖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암담하다. 주택가격 하락과 고금리 등으로 분양시장이 불황에 빠지면서 개발사업 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사업 자체를 재검토하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PF 연체율이 급상승하는 가운데 최근 불거진 새마을금고 사태가 또 하나의 악재로 더해지면서, 제2금융권에서부터 부실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부동산 PF의 구조적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사장마다 부실의 원인이 각기 다르고 예측 불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히 손봐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PF 관련 당사자들의 능력과 책임 문제다. 실력도 없으면서 공사에 뛰어들어 부실을 초래하는 시행사나 시공사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한층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허가 취소를 포함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 대충 일하고 돈만 챙기려 드는 도덕적 해이를 애초부터 막아야 한다. 

다음으로 금융기관의 여신심사 능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지금의 현실은, 건설 현장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미흡한 심사역들이 형식적으로 심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심사역들에 대한 교육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나아가 부실 발생 시 엉터리로 심사한 당사자는 물론 해당 금융기관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문책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힘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손해 보는 사례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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