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는 부동산 시장을 넘어 국내 경제의 주요 화두로 부상했다. 당장 금융기관과 건설업계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길게는 PF 시장의 병목현상이 부동산 공급을 줄여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와 민간 업계에서는 작년부터 PF 부실 확산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사업장 점검, 유동성 공급, 사업구조 개선, 부실채권 매입 등 다방면에 걸친 대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과거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PF 부실이 건설업계로 저축은행으로 확산되면서 시장 정상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전례를 반복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저변에 깔려있는 셈이다.

다만, 발 빠른 대응으로 연초 대비 위기감은 다소 누그러졌더라도 아직 PF를 둘러싼 본질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PF 부실 문제는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국내 개발시장의 주요 화두로 잔존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PF는 금융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호황기에 효과적이지만 위기에는 취약한 국내 개발사업 구조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지가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 시행사와 건설사의 취약한 자본력, 금융권의 경쟁적 영업 등으로 대표되는 국내 부동산 개발시장은 적은 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데 최적화돼있다.

시장이 정상 작동할 때는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만, 위기가 찾아오면 부실이 불거지며 부진이 길어지기 쉽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도 그렇지만, 이번 위기도 글로벌 공급망 혼란, 급격한 금리인상이라는 글로벌 환경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위기의 원인은 글로벌 공통이지만, 반복되는 대규모 시장 위기에 국내 개발업계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체제를 갖추고 있는지는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금융권이 사업 위험을 더욱 부담하는 구조로 변해왔다. 금융위기 당시 100대 건설사 중 20% 가량이 도산하는 위기를 겪으며, 시행사와 함께 사업실패 위험을 분담했던 건설사들은 개발사업에서 역할을 크게 줄여나갔다.

사업비 대부분을 PF로 미리 확보하는 조건으로 건설사가 건물의 완성 만을 책임지면서, 증권사를 비롯한 비은행권 금융사들이 수익 확대를 위해 건설사 대신 손실 위험을 적극적으로 부담했다. 이러한 구조 변화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비해 건설사의 부실 위험은 줄었지만, 매각이나 분양이 잘 안됐을 때는 금융사가 대규모 손실을 떠안게 됐다. 과거에 비해 개발사업 부실이 금융사의 부도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시행사의 자본력이다. 매출 1조원이 넘는 전문개발사가 여럿 탄생하기도 했지만, 국내 개발업계는 아직 영세 시행사의 비중이 높다.

개발사나 전문 투자자가 시행자로 참여해 자기 돈으로 토지를 매입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에서는 총 사업비 중 시행사가 부담하는 금액이 5%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순위 대출기관이나 자산 선매입 기관 등이 시행사의 자본 부족을 일부 대신하지만, 사업 수행 주체의 자본력이 취약하다는 점은 위기 상황에서 특히 문제가 된다. 시장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시행사가 버티지 못하면서 PF가 부실 처리되고 위험이 전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 부동산 PF 부실에 대응하는 골든타임이 짧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정부와 업계에서 발 빠르게 PF 시장 부실에 대응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국책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대형 민간 금융사들도 올해 초부터 건설업계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말에는 업권별 대주단협약이 재가동됐고, 9월에는 캠코와 민간 업체가 공동투자하는 부동산 PF 지원펀드가 1조원 규모로 운영되며 부실 사업장의 정상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대주단협약이나 PF 지원 펀드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근 부동산 PF시장의 병목현상과 부실 확산 우려는 단순히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 아니다.

공사비 등 개발원가가 오른 반면 분양·매각 시장이 침체되면서 개발사업의 수익 구조가 깨진 것이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다. 따라서 대주단협약이나 지원펀드가 토지비, 공사비, 금융비 등 사업비를 낮추는 구조개선을 통해 개발 자산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한다.

비 아파트 분양·매각 시장이 회복될지도 관건이다. 브릿지론은 본PF, 본PF는 분양·매각에 의한 중도금·잔금을 상환재원으로 한다. 이는 개발된 자산이 시장에서 분양 또는 매각될 수 있어야 PF 시장의 병목이 해소된다는 뜻이다.

최근 수도권 주택시장이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방에는 여전히 5만호 이상의 미분양 아파트가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아파트 이외의 시장이다. 최근 PF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증권, 저축은행, 캐피탈 업권은 PF의 60% 이상을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물류 등 아파트 이외 사업에 대출했다. 중소형 건설사의 참여 비중이 높다는 점도 비 아파트 사업의 취약점이다.

아파트처럼 시공사 브랜드가 분양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공사비를 줄이려 중소형 건설사와 시공 계약을 맺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세제·거래 규제 완화 등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이 아파트 시장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 수혜 대상에서 한 발 비껴나 있는 비 아파트 시장은 상대적으로 부실 규모도 크고 회복도 늦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부동산 PF 대응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비은행권의 중소형 금융사와 중소형 건설사는 당분간 PF 시장의 약한 고리로 남아있을 수 있음을 뜻한다. 

PF 부실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단기 과제라면, 위기 대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국내 개발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중기 과제이다. PF를 매개로 금융권 부실이 확산하지 않도록 하려면 금융사 간에 과도한 영업 경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PF 취급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금융권 PF 규제는 개발업계 전반의 구조전환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지난 역사에서 보듯, 금융권의 PF는 국내의 중소형 건설사나 영세 시행사가 시장에 참여해 외형과 내실을 키우는 통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PF 시장의 급격한 규제는 부동산 시행사와 건설업체의 영업을 위축시켜 장기적인 공급 부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행사의 부족한 자본력을 보완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해외 주요국처럼 금융투자자 등이 영세 시행사의 사업 파트너가 돼 자본을 투자하도록 하고, 부동산 시장에서 기관 투자자나 전문 투자기구의 자산 매입·운영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의 규모가 크고 다양한 투자자가 존재할수록 위기 상황에서 시장의 진폭을 줄이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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