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금리·레고랜드 사태 시작으로
올해 12조 증발…'채권 돌려막기'
제동 건 당국, 증권사도 몸 사려

올해 금융감독원의 집중 검사 타깃이 된 증권사 일임형 랩어카운트의 계약자산(잔고)가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만 해도 150조원을 넘어섰던 잔고가 이제는 100조원을 유지하기도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일임형 랩어카운트의 계약자산은 102조8293만원으로 지난 2017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115조1181억원)과 비교하면 12조2888억원이나 감소한 금액이다.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투자금을 굴려주는 자산관리(WM) 서비스다. 운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고, 일임한 운용역에게 운용을 지시하거나 상담도 할 수 있어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상품으로 주목받았다.

잔고가 빠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고 주식과 채권 시장이 동시 부진을 맞으면서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여기서 레고랜드 사태가 기름을 부었다. 연말엔 단기자금 시장까지 경색되자 일임형 랩어카운트에선 대규모 환매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나마 올해 초 들어선 채권 금리가 하락하고 증시가 반등하면서 잔고가 횡보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연초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을 테마검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하나증권, KB증권 등 업계 점검을 시작하자 시장이 또 다시 위축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 채권형 랩 상품 손실이 확대되자, 업무실태에 대한 집중 점검을 진행했다. 특히 환매 요청을 받은 일부 증권사가 손실 보전을 위해 민평금리보다 비싼 가격으로 다른 증권사 랩·신탁에 채권을 넘기거나 대신 다른 증권사 랩·신탁의 채권을 비싸게 사는 '채권 돌려막기' 관행을 문제 삼았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도 채권형 랩 영업에 소극적이다. 금감원은 검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이례적으로 자료를 배포해 불법 사례를 공유하는 동시에 위법개연성이 높은 증권사를 추가로 검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랩어카운트 시장이 다시 커지기 위해선 신뢰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랩·신탁 상품 가입자는 기업과 기관투자자가 많다. 자금이 손실을 본데 이어 일부는 유동화 실패로 환매마저 거부당하면서 증권사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

증권사 관계자는 "현장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일임형 랩에 대한 수요가 많이 줄었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증권사들이 랩어카운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채권형 랩 영업을 공격적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NH투자증권은 최근 일임형 자산관리 상품인 채권형 랩어카운트에 대한 ‘만기 미스매칭’ 전략으로 손실을 본 고객들을 대상으로 선제적 손해 배상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자 손해 배상 규모는 100억원대 후반으로 파악됐다.


대한금융신문 유정화 기자 uzhwa@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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