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꿀로 곤충 유인하고, 남색 열매는 먹이 찾는 새 유인
수도권 근교 산지는 물론 전국 고루 분포한 키 작은 나무

▲ 초여름이면 꽃이 피는 누리장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주로 산 주변에서 자라며 잎에서 풍기는 냄새로 천적을 물리친다. 사진은 북한산 주변에서 찍은 누리장나무의 꽃 사진이다.
▲ 초여름이면 꽃이 피는 누리장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주로 산 주변에서 자라며 잎에서 풍기는 냄새로 천적을 물리친다. 사진은 북한산 주변에서 찍은 누리장나무의 꽃 사진이다.

서울 근교의 북한산이나 관악산, 청계산 산행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다. 물론 수도권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산지에서 이 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키도 크지 않아서 큰나무라고 해봐야 어른 키를 약간 넘길 정도다.

간혹 4~5m까지 크는 나무를 볼 수 있지만,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 나무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기는 꽃이 필때다. 7~8월 한여름에 잎겨드랑이에 모여 피는 이 나무의 꽃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하지만 꽃의 아름다움에 걸맞은 이름을 갖지는 못했다. 이유는 나무, 주로 줄기와 잎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 때문이다.

이 나무의 이름은 ‘누리장나무’다. 누리는 ‘누린내’, 장은 ‘작대기’를 뜻한다. 굳이 우리 말로 풀자면 누린내가 나는 나무가 된다. 그러나 화사하게 핀 꽃은 그렇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비와 벌을 불러들일 만큼 향기도 짙고 꿀도 많다. 밀원식물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나비의 더듬이처럼 축축 늘어지는 꽃술이 매달린 분홍빛과 하얀색으로 이뤄진 꽃은 가는 발걸음을 멈출 만큼 여름 꽃 중 가장 화려하다. 그런데 수분기 누리장나무 꽃의 활동은 더욱 흥미를 끈다. 꽃밥이 달린 수술이 먼저 고개를 들어 수분을 돕는 곤충의 몸에 꽃가루를 묻힌다.

그러면 제 역할을 다한 수꽃은 고개를 숙이고 암술이 바톤을 이어받아 고개를 처든다. 그리고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들인다. 건강하게 후손을 이어나가기 위해 체계적인 전략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누리장나무는 여름꽃을 자랑한 뒤 무너지듯 꽃을 떨군다. 하지만 누리장나무의 볼거리가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뒤집힌 분홍색 꽃받침은 선명하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 빠르면 9월부터 누리장나무는 짙은 감색의 열매를 맺는다. 별모양의 꽃받침과 어우러져 마치 여성 엑세사리인 브로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은 북한산 하산길에 찍은 누리장나무의 열매 사진이다.
▲ 빠르면 9월부터 누리장나무는 짙은 감색의 열매를 맺는다. 별모양의 꽃받침과 어우러져 마치 여성 엑세사리인 브로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은 북한산 하산길에 찍은 누리장나무의 열매 사진이다.

9월이면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의 열매가 꽃이 진 자리마다 맺히기 시작해 나무는 금방 별모양 꽃받침에 박힌 검은 보석 브로치로 가득 채워진다.

짙은 분홍빛 꽃받침에 박힌 검은색 열매는 그만큼 도드라져 눈에 쉽게 띈다. 이는 다 익은 열매를 새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나무가 선택한 생존전략이다. 

그렇다면 꿀도 많고 색깔도 화려한 이 나무는 왜 누린내를 가지게 된 것일까. 이유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대비책이다. 천적들이 잎을 자유롭게 먹지 못하도록 선택한 누리장나무의 필살기인 셈이다.  

이 냄새는 클레로덴드린 등의 화학물질에서 비롯된다. 이 물질은 나무 성장에 방해가 되는 해충을 막을 수 있어 살충제가 없던 시절, 화장실에 누리장나무의 잎과 가지를 꺾어 두기도 했고 주변에 일부러 누리장나무를 심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 물질은 자기 성장에 해를 끼치는 식물에게도 영향을 주는 타감 작용을 한다. 즉 천연 제초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먹구슬나무와 독말풀과 함께 제초제로 주목받고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누리장나무는 그 냄새 때문에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구린내가 나서 구릿내나무, 오동나무 잎과 비슷하게 생겨서 냄새나는 오동나무라는 뜻으로 취오동나무라도 불린다. 제주도에서는 개낭, 개똥낭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개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별명이 많지만, 모두 냄새와 관련돼 있다. 그러니 냄새와 관한 이야기쯤은 이 나무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옛날에 백정 아들이 살았는데 양반집 여인을 사랑하게 됐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람이니 가슴앓이 끝에 백정의 아들은 죽었고, 그의 무덤에서 이 나무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무에서 나는 누린내가 백정의 냄새라고 하며 누리장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어떤 식의 발상이든 이 나무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냄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냄새나는 이 나무의 어린 순을 식용으로 먹었다. 냄새를 죽이기 위해 먼저 데친 뒤 양념에 묻혀서 먹었으며 가지는 약용으로 사용했으며 열매는 천연 염색제로 쓰였다.

나무들이 거의 그렇듯이 누리장나무도 여러 쓰임새를 사람들에게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관상용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주변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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