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깊은 만큼 일찍 다가오는 설악산의 가을
단풍색도 좋지만, 기암괴석 규모에 압도당해

▲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다. 우리 땅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곳이다. 사진은 등산인들의 로망인 단풍든 공룡능선의 모습이다. 신선대에서 마등령까지 기암괴석으로 솟은 봉우리들을 확인할 수 있다.
▲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다. 우리 땅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곳이다. 사진은 등산인들의 로망인 단풍든 공룡능선의 모습이다. 신선대에서 마등령까지 기암괴석으로 솟은 봉우리들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의 가을이 조심스레 기지개를 켤 때 산속의 가을은 추워지는 날씨만큼 성큼성큼 다가와 온갖 곳에 단풍 칠을 한다. 그 단풍을 보기 위해 지난 주말 설악산 공룡능선을 찾았다. ‘울긋불긋’이라는 부사로 모든 것을 형용할 수는 없지만, 그 단어 이상으로 단풍의 색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특히 산이 깊어 일찍 다가오는 설악의 단풍은 푸른 가을 하늘과 합을 이뤄 절경을 연출한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선대로 그리고 마등령으로 올라 공룡능선을 타고 무너미고개로 내려와 천불동 계곡을 거쳐 비선대와 소공원으로 내려오는 20여 km 정도의 코스를 잡았다. 여명도 트지 않은 신새벽부터 산행에 나선 사람들의 흔적은 소공원 입구부터 밀리는 차량 행렬과 이중삼중으로 차를 주차하는 주차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소공원 입구나 신흥사 주변의 나무에는 단풍이 내려앉지 않았다. 멀리 설악산의 속살에는 군데군데 단풍 붓질이 돼 있지만, 산 가장자리는 밋밋한 푸르름이 여전했다. 비선대에 들어서 금강굴로 오르는 길에 접어들어서야 서서히 시속 830m로 남하한다는 단풍의 얼굴을 조금씩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다.

그래서 예열된 몸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고도를 높이는 데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높이를 갖기 위해 경치를 포기해야 하는 구간이다.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에 가까워지면 오른쪽으로는 외설악의 산봉우리들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설악의 본령과 공룡능선이 동트는 태양의 역광을 받아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장엄함의 시작이다. 

마등령에 이르면 절정의 단풍을 만나게 된다. 산 아래쪽에선 생강나무와 물푸레나무, 신갈나무의 노란 단풍이 중심이라면 이곳부터는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 등 붉은 단풍이 더 눈에 띈다. 이렇게 단풍이 화려해지면 공룡능선의 기암괴석도 가을을 뽐내듯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 설악산의 주요 계곡 중 하나인 천불동 계곡에도 단풍은 곱게 들었다. 대청봉을 오르거나 공룡능선을 등산한 후 하산길로 잡는 코스다. 천불동 계곡에는 물길이 바뀔때마다 폭포를 만나게 된다. 사진은 천당폭포의 모습이다.
▲ 설악산의 주요 계곡 중 하나인 천불동 계곡에도 단풍은 곱게 들었다. 대청봉을 오르거나 공룡능선을 등산한 후 하산길로 잡는 코스다. 천불동 계곡에는 물길이 바뀔때마다 폭포를 만나게 된다. 사진은 천당폭포의 모습이다.

설악이 아름다운 것은 그 단풍의 빛깔도 있겠지만, 360도 어느 공간을 봐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기암괴석의 규모와 깊이가 보태지기 때문일 것이다. 공룡능선이 바로 그랬다. 나한봉에서 시작해서 큰새봉과 1275봉, 신선대로 이어지는 5km 남짓의 능선길은 등산인들의 로망으로 자리한 공간이다. 공룡의 등뼈 돌기처럼 솟은 암봉들, 그리고 턱까지 차오르도록 만드는 연속되는 오르막. 이것이 공룡능선이 지닌 매력일 것이다.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공룡능선. 경치가 발목을 잡아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행이다. 나한봉에서 시작했기에 신선대에 이르면 고개를 돌려서 걸어온 공룡능선을 인증하게 된다. 이곳이 공룡능선 공식 사진관이다. 멀리 마등령에서 시작한 공룡능선과 그 뒤 황칠봉과 주변의 수많은 봉우리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다. 감탄사 이외에 어떤 말도 필요없는 곳이다. 

이제 하산길이다. 흐르는 물소리도, 떨어지는 폭포 소리도 예사 물이 아니다. 소리부터 웅장하다.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올라 대청봉을 찍고 희운각으로 내려오면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으로 방향을 잡을지 아니면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갈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답은 처음 세운 계획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남아 있는 체력이 결정의 기준이 돼줄 것이다. 이때 많은 사람이 천불동으로 내려온다. 병풍처럼 암석 지대가 펼쳐진 모습, 그리고 봉우리 정상 부위에 수없이 서 있는 인물상들이 하나같이 부처처럼 보여서 누군가가 이름을 그리 붙였을 것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천당폭포를 포함해 네댓 개의 폭포도 내려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물론 하산길 자체가 짧지는 않다. 비선대까지 내려가 다시 소공원으로 가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설악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범사에 속한다. 

가진 체력을 고갈시켜가며 걸은 20여 km의 단풍길은 분명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가져다주는 산행이다. 웅장한데다가 기이하기까지 한 설악의 단풍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땀 흘린 만큼 눈에 들어오는 단풍의 질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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