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발효’ 허정원 대표, 북미 수출용 개발
지역 특산 ‘감국·포포’ 등도 증류소주 만들 계획

▲ 미생물 박사가 충남 태안으로 귀촌해서 술을 빚고 있다. 막걸리와 약주, 소주 등의 우리 술과 다양한 발효식초도 만들고 있다. 사진은 태안발효 허정원 대표가 증류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다.
▲ 미생물 박사가 충남 태안으로 귀촌해서 술을 빚고 있다. 막걸리와 약주, 소주 등의 우리 술과 다양한 발효식초도 만들고 있다. 사진은 태안발효 허정원 대표가 증류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다.

여름만 되면 주당들은 기를 써 가며 수박·참외와 같은 제철 과일로 술의 흥취를 높이려 한다. 무더위를 잊기 위한 재미를 찾고자 함이다. 특히 부드러운 여름 과일의 속을 파내고 그곳에 소주를 넣어 과일 맛 소주를 만드는 것을 일종의 유희처럼 즐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실제 여름 과일을 넣어 증류 소주를 만드는 곳이 있다. 주인공은 ‘참외소주’다. 여름철 재미 삼아 만들던 ‘참외 맛 소주’가 아니라 실제 술을 만들 때 참외를 넣어 발효주를 만들고 이 술을 증류했다. 전통 소주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면서 부재료로 참외를 보탠 것이다. 이 술을 만드는 곳은 충남 태안의 신생 양조장인 ‘태안발효(대표 허정원)’다.

유산균으로 학위를 받고 국내외 연구소에서 미생물을 연구해온 허정원 대표는 ‘보건환경연구원’을 끝으로 귀촌을 결심하고 지난 2018년 태안에 정착한다. 그리고 지난 2021년 ‘태안발효’라는 작은 양조장을 경관 좋은 곳에 차리고 평생 배운 지식과 기술을 이곳에 녹여내고 있다. 식초부터 우리 술까지 그의 머리와 손을 거쳐 간 완성품은 여럿이다. 하지만 마케팅엔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첫인상으로 다가온 ‘낙향한 선비’ 같은 풍모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에서 ‘참외소주’ 개발 요청이 들어와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올 초 미국에 수출한다. 한국인 식당과 마트에서의 수요였다. 기왕에 만들어진 술이니 국내에도 참외소주를 알리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소주를 발표하기도 했다.

▲태태안발효에서는 참외를 넣어 증류한 '외술'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고 있다. 북미 수출용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국내에서도 시판하고 있다. 사진은 참외술과 함께 만들고 있는 증류소주 '태안별주'다.
▲태태안발효에서는 참외를 넣어 증류한 '외술'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고 있다. 북미 수출용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국내에서도 시판하고 있다. 사진은 참외술과 함께 만들고 있는 증류소주 '태안별주'다.

‘참외’는 한국이 원산지인 식물이다. 그래서 허 대표의 소주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참외소주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참외를 주제로 소주를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소비자들은 참외와 소주의 조합을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참외는 소주와 궁합이 좋은 과일이다.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소주의 주독을 푸는데 최고의 비방이라고 ‘참외꼭지즙’을 추천하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오이 넣은 소주’도 숙취 해소에 도움을 받고자 만들었던 소시민들의 편법이었다.

이와 함께 참외향은 잘 빚은 우리 술에서 느낄 수 있는 주향이기도 하다. 심지어 외국의 유명 ‘진’ 중에는 특유의 오이향을 무기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기도 했으며 국내 양조장에선 아예 오이를 넣은 증류주를 판매하기도 했다.

그런데 태안발효에서 만든 참외 소주 ‘외술’은 이미 이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첫 모금과 함께 참외류의 여름 과일향이 다가오고 후미로 참외 꼭지의 쓴맛이 뒤이어 올라온다. 알코올 도수가 있어 단단하게 입안을 장악하면서 참외의 풋풋함이 이내 입을 풀어주는 느낌의 술맛이다. 미국에 수출한 술은 알코올 도수 24%였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국내에 공개한 제품은 40%의 술이다.

이럴헤 참외소주 ‘외술’만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 양조장의 술이 참외소주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허 대표의 포트폴리오는 다양하다. 이미 막걸리와 약주, 소주 등 우리 술 3형제를 만들고 있으며, 여기에 참외소주를 하나 더 보탠 것이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3형제는 ‘별주부전’ 마을에 착안해 레이블은 모두 별주부전의 주인공인 토끼와 거북이 도안으로 만들어져 있다. 막걸리는 ‘태안백주(12%)’, 약주는 ‘태안법주(16%)’, 그리고 소주는 ‘태안별주(40%, 25%)’다.

이 밖에도 허 대표는 요즘 감국과 망고처럼 생긴 ‘포포’는 과일에 빠져 있다. 모두 태안에서 나는 특산품이다. 감국은 국화소주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며, ‘포포’는 7~8년 전부터 태안에서 농사를 시작한 바나나와 망고를 합친 과일로 새로운 유형의 술을 생각하면서 떠올린 부재료다. 물론 지자체에서의 요구도 있었다. 이들을 소주에 재료로 삼기 위해 오늘도 그의 아지트에는 주향이 떠날 틈이 없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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