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바위·건물 외벽 등 가리지 않고 잘 자라
포도와 형제지간, 잎 모양·맛으로 확인 가능

지난 8월 광주 무등산 등산에서 만난 규봉암과 광석대 사진이다. 광석대 바위 일부에 담쟁이덩굴이 들어차 있다. 가을 무등산의 절경은 이곳에서 시작될 듯싶다.
지난 8월 광주 무등산 등산에서 만난 규봉암과 광석대 사진이다. 광석대 바위 일부에 담쟁이덩굴이 들어차 있다. 가을 무등산의 절경은 이곳에서 시작될 듯싶다.

지난 여름 광주 무등산을 올랐으나 궂은 날씨에 푸른 하늘을 만나지 못하고 곰탕(?) 속에서 헤매다 땀범벅이 돼 내려온 기억이 있다.

그 덕분에 입석대, 서석대 등 무등산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주상절리는 어느 하나 제대로 만나지 못했으나, 등산 막바지에 규봉암에 이르러 광석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었다. 구름이 걷히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날이 개지 않아 광석대 주상절리대 전체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주상절리 사이에 자리한 규봉암과 관음전 뒤편의 절벽 같은 바위 위를 가득 채운 담쟁이덩굴은 그날 등산의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단풍이 드는 계절, 다시 무등산을 찾아 규봉암의 가을을 보리라 다짐했지만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그러다 경기도 여주의 신륵사를 찾은 가을날, 박물관 인근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우고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을 만나게 됐다.

산속 바위에 핀 담쟁이 단풍이 아니어서 아쉽긴 했지만, 맑은 붉은색 담쟁이덩굴을 보고 싶었던 필자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담쟁이덩굴은 포도과에 속하는 낙엽성 덩굴식물이다. 줄기마다 빨판 같은 흡착근이 있어서 나무, 바위, 건물 외벽 등 장애물을 가리지 않고 잘 타고 올라가는 나무다.

요즘은 도시의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을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원래 이 식물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길 좋아한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먼저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다른 덩굴식물들이 그렇듯이 담쟁이덩굴은 생장 속도가 빠르다. 그래야 높이를 차지할 수 있고, 더 붉은 단풍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햇볕을 차지한 승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결과다.

여주 신륵사 인근에 있는 여주박물관 부속건물 외벽에 담쟁이덩굴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햇볕을 온전히 받아 붉은색 단풍이 곱게 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주 신륵사 인근에 있는 여주박물관 부속건물 외벽에 담쟁이덩굴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햇볕을 온전히 받아 붉은색 단풍이 곱게 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계절이면 담쟁이덩굴은 야생 머루보다 작은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는 충분히 달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인상적인 맛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설탕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나무의 줄기를 졸여 감미료로 썼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잎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맛으로도 포도의 형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담쟁이덩굴은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처럼 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빨리 단풍이 든 곳은 졌을 것이고 단풍이 한창인 곳은 지기 시작할 것이다.

소설에선 가난한 화가 지망생 존시를 위해 베어먼이 담벼락에 잎새 하나를 그려 넣어 존시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지만, 현실은 모든 잎을 떨구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할 뿐이다. 

그렇다고 현실에서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겨울이 깊어가도 떨어지지 않는 검은색 열매에 깃들어 있다. 겨울을 나는 새와 다람쥐에게 훌륭한 먹이가 돼주면서 후계목들을 주변에 퍼뜨리면서 말이다. 

담쟁이덩굴을 흔히 원산지를 외국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비(서양담쟁이덩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땅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동아시아 원산의 식물이다. 북한에서는 담장이덩굴로, 한자로는 파산호(爬山虎)와 지금(地錦) 등으로 썼다.

파산호는 산을 기어오르는 호랑이라는 의미이며 지금은 땅을 덮고 있는 비단이라는 뜻이다. 모두 형태에서 특징을 잡은 이름들이다. 

잎을 떨군 나무의 줄기는 회갈색을 띠고 있으며 도시에서 보는 나무는 손가락 굵기 정도 된다. 큰 나무는 발목 크기까지 자란다고 한다.

꽃은 초여름에 피는데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황록색에 크기도 작아 살펴봐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참고로 요즘 많이 심고 있는 서양 담쟁이덩굴은 잎이 다섯으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어 구별할 수 있다.

주로 관상용으로 나무를 심지만, 약용으로도 사용해왔다. 줄기와 열매는 당뇨에 썼으며 뿌리는 출혈과 골절로 인한 통증, 편두통에 사용했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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