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양조인생, 새로 쓰고자 전업 양조인 선언
폐교 양조장 처분하고 과학양조 새 울타리 마련

▲ 전남 장성에 있는 ‘청산녹수’ 양조장이 최근 새 양조장을 짓고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은 전남대 정년퇴직을 앞둔 김진만 대표가 증류기를 설명하는 모습이다.
▲ 전남 장성에 있는 ‘청산녹수’ 양조장이 최근 새 양조장을 짓고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은 전남대 정년퇴직을 앞둔 김진만 대표가 증류기를 설명하는 모습이다.

황진이에게 ‘청산녹수’는 나의 정과 님의 정을 연결하는 시의 대상이었다면, 김진만 대표에게 ‘청산녹수’는 미생물로 연결된 과학자와 양조인의 마음 둘 모두를 담았던 희망의 대상이었다. 전남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로서 겸직이 가능한 벤처기업, ‘청산녹수’ 양조장을 만든 것은 지난 2009년.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15년 전의 일이다.  

전라남도 장성군의 한 폐교(장성북초)를 인수해 우리 술을 빚는 양조장을 만들고, 다양한 스토리를 쌓아가면서 2017년에는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스파클링 막걸리 등 다양한 술을 생산해왔던 김진만 대표는 한편에서는 교수로서 연구와 강의라는 삶의 틀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양조장의 대표로서 ‘1인 2역’을 해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역특산주의 통신판매와 관련한 전통주 관련 법 개정을 주도하는 등 ‘한국술’ 업계의 발전을 모색하는 일까지 ‘1인 다(多)역’을 소화하면서 지내 온 15년이었다. 

하지만 양조인이라는 이름표 앞에서 김 대표는 끝까지 의문부호를 떼어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년퇴임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지난 15년을 반추했다고 한다. 결론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과학자가 중심이었던 삶에서 ‘전업 양조인’으로서의 인생2막을 제대로 걸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그의 의지와 열정을 끌어모아 새로운 양조장을 짓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교수로서 평온한 은퇴 이후의 삶을 말하기도 하고, 업계에 쌓은 공덕을 바탕으로 공적인 삶만 살아도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그는 우리 술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발효제와 과학양조의 화두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폐교를 처분하고 이웃 동네에 마련한 부지에 지난해부터 공사에 들어가 올여름, 새로운 양조장을 완성한다. 규모는 대지 550평(1818㎡)의 공간에 건평 330평(1090㎡)으로 지은 2층 구조의 건물이다. 

양조장 신축으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 까닭은 양조장으로 사용했던 학교 건물이 열관리와 양조 동선 관리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조업에 전념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동선으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자동화의 도움도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옛 양조장이 동선관리와 열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현재의 양조장은 합리적인 동선관리가 가능한 구조다. 자동 시스템을 통해 막걸리를 병입하는 장면이다.
▲ 옛 양조장이 동선관리와 열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현재의 양조장은 합리적인 동선관리가 가능한 구조다. 자동 시스템을 통해 막걸리를 병입하는 장면이다.

이 공간에서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술을 만들고 있다. 술의 설계부터 양조, 그리고 영업 및 마케팅까지 자신이 세운 기준과 철학에 맞게 펼쳐나갈 예정이다. 제품도 간추릴 생각이다. 시그니처 상품인 ‘사미인주’는 막걸리에서 청주(주세법상 약주)로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상품명이 지닌 이미지에 맞게 술의 정체성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지금은 주력 상품이 될 ‘편백숲산소막걸리’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감미료없이 쌀과 누룩으로 만든 목넘김이 깔끔한 막걸리다. 변화된 막걸리 맛은 지난달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고양막걸리축제’에서 확인됐다. 판매를 목적으로 가지고 올라간 막걸리를 조기 완판했다. 알코올 도수는 6.8도. 술의 질감은 농후하지만, 목넘김은 그 어느 술보다 부드럽다. 달면서 신맛의 균형감이 좋아 소비자들의 평가가 좋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 술맛을 위해 5양주를 고집하고 있다. 발효 기간만 40일이 걸린다. 누룩과 입국을 같이 사용하고 저온발효를 선택했다.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이지만 자신이 생각한 막걸리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술이기에 청산녹수의 새로운 시그니처로서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김진만 대표는 맑은 막걸리도 제품기획에 들어갔다. 막걸리의 맑은 부분을 좋아하는 고객들을 위해서다. 

청산녹수의 변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증류주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사용했던 증류기는 오키나와의 양조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작으로 제작한 증류기였다. 이 증류기로 ‘첨내린’과 ‘불로문’ 등의 소주를 생산해왔는데, 새로 양조장을 지으면서 고가의 증류기를 새로 들였다. 쌀소주는 물론 장성지역의 특산품인 사과로도 증류주 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증류주는 숙성이 기본이라는 생각에 최소 1년은 묵혀서 내보낼 예정이다. 자신이 마셔서 납득이 되는 술. 이것이 전업 양조인의 길을 나선 김진만 대표의 기준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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