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천연기념물이지만, 수세와 처지 서로 달라
정이품송은 수세 쇠하고, 정부인송 지금도 건강

▲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에는 두 그루의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정이품송’이다. 하지만 두 차례의 자연재해 피해로 한쪽 가지가 부러져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에는 두 그루의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정이품송’이다. 하지만 두 차례의 자연재해 피해로 한쪽 가지가 부러져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같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라도 인지도에 따라 세인의 관심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충북 보은 속리산에는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한 그루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이고, 다른 한 그루는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정부인송(제352호)’이다.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서로 부부의 연을 맺게된 소나무지만, 속리산을 찾아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정부인송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정이품송’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쇠약해져 가고 있지만, 서원리 ‘정부인송’은 아직도 육중한 수세를 유지할 만큼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생육환경의 차이가 두 나무의 수세 차이로 이어졌을 것이다. 

정이품송은 높이 16.5m 가슴높이에서의 줄기 둘레가 5.3m이다. 1980년대까지는 좌우대칭 구조의 원추형 나무 꼴을 잘 유지해 뭇사람들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더욱이 《조선왕조실록》 등의 정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정이품’ 벼슬 이야기 덕분에 이 나무에는 신성성까지 부여돼 근대국가에서도 직위(?)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왔다.

1980년대 솔잎혹파리가 기승을 부릴 때 관계 당국은 감염을 막기 위해 이 나무에 거대한 방충망을 씌웠다. 7~8년 동안 이 나무는 세상과 차단된 채 방충망을 뒤집어쓰고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덕분인지 솔잎혹파리 피해는 없었지만, 불행은 뒤에 찾아왔다. 1993년과 2004년 두 차례 태풍과 폭설로 큰 가지를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이때의 상처는 여전히 복원되지 않아 더 이상 원추형의 좌우대칭 구조라고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정이품송’에서 7km 정도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정이품송은 곧은 나무인데 비해 서원리 소나무는 가지가 두 갈래로 나눠져 자라 암소나무로 보고 ‘정부인송’이라고 이름 붙였다.
▲ ‘정이품송’에서 7km 정도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정이품송은 곧은 나무인데 비해 서원리 소나무는 가지가 두 갈래로 나눠져 자라 암소나무로 보고 ‘정부인송’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에 반해 1988년에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정부인송’은 높이 15.2 m, 가슴높이 줄기 둘레 4.7m로 정이품송에 비해 약간 작은 듯하지만, 수세는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우산 모양을 하고 있어 오히려 더 커 보인다.

서원리 소나무를 정부인송으로 칭하는 까닭은 외줄기로 곧게 뻗은 정이품송과 달리 두 갈래로 줄기가 나눠 자란 모습에서 암소나무라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나무의 결정적 차이는 현재의 수세에 있지 않다. 정이품송은 고립무원처럼 평지에 홀로 독야청청하는 나무처럼 버텨내듯 서 있다면, 정부인송은 주변의 송림과 함께 어울려 있으며 활엽수림과도 경쟁하며 자라고 있다. 즉 나무의 생태 환경이 두 나무의 성격과 수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직접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홀로 서 있는 정이품송은 각종 자연재해를 혼자서 막아내야 한다면 정부인송은 다른 나무들과 함께 협력해서 막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나무의 입장에서 본다면 서원리 소나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정이품송 주변에 나무를 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이미지가 굳혀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요기를 위해서 홀로 서 있는 정이품송을 소나무의 기상이라고 칭찬하겠지만,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한없이 애처로운 일이다. 그리고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도 사람들의 욕심이 개입된 결과이지 나무가 자초한 것은 아니니 더욱 그렇다. 

정이품송은 이런 결정에 한 번도 개입하지 않았다. 모두 사람들의 결정이다. 그리고 언제가 이 나무가 생명을 다하거나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면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에서 이 나무를 지워나갈 것이다. ‘일부러’가 아니라 관심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 또한 자연의 흐름이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나무는 나무와 같이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야 나무도 자연 속에서 생사고락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소나무는 사람의 개입이 절실히 필요한 나무다. 이 땅에 많은 소나무가 살아남은 것도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정이품송’처럼 관리하기 보다는 ‘정부인송’처럼 대우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것이 더 나무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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