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천연기념물이지만, 수세와 처지 서로 달라
정이품송은 수세 쇠하고, 정부인송 지금도 건강
같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라도 인지도에 따라 세인의 관심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충북 보은 속리산에는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한 그루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이고, 다른 한 그루는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정부인송(제352호)’이다.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서로 부부의 연을 맺게된 소나무지만, 속리산을 찾아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정부인송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정이품송’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쇠약해져 가고 있지만, 서원리 ‘정부인송’은 아직도 육중한 수세를 유지할 만큼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생육환경의 차이가 두 나무의 수세 차이로 이어졌을 것이다.
정이품송은 높이 16.5m 가슴높이에서의 줄기 둘레가 5.3m이다. 1980년대까지는 좌우대칭 구조의 원추형 나무 꼴을 잘 유지해 뭇사람들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더욱이 《조선왕조실록》 등의 정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정이품’ 벼슬 이야기 덕분에 이 나무에는 신성성까지 부여돼 근대국가에서도 직위(?)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왔다.
1980년대 솔잎혹파리가 기승을 부릴 때 관계 당국은 감염을 막기 위해 이 나무에 거대한 방충망을 씌웠다. 7~8년 동안 이 나무는 세상과 차단된 채 방충망을 뒤집어쓰고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덕분인지 솔잎혹파리 피해는 없었지만, 불행은 뒤에 찾아왔다. 1993년과 2004년 두 차례 태풍과 폭설로 큰 가지를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이때의 상처는 여전히 복원되지 않아 더 이상 원추형의 좌우대칭 구조라고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1988년에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정부인송’은 높이 15.2 m, 가슴높이 줄기 둘레 4.7m로 정이품송에 비해 약간 작은 듯하지만, 수세는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우산 모양을 하고 있어 오히려 더 커 보인다.
서원리 소나무를 정부인송으로 칭하는 까닭은 외줄기로 곧게 뻗은 정이품송과 달리 두 갈래로 줄기가 나눠 자란 모습에서 암소나무라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나무의 결정적 차이는 현재의 수세에 있지 않다. 정이품송은 고립무원처럼 평지에 홀로 독야청청하는 나무처럼 버텨내듯 서 있다면, 정부인송은 주변의 송림과 함께 어울려 있으며 활엽수림과도 경쟁하며 자라고 있다. 즉 나무의 생태 환경이 두 나무의 성격과 수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직접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홀로 서 있는 정이품송은 각종 자연재해를 혼자서 막아내야 한다면 정부인송은 다른 나무들과 함께 협력해서 막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나무의 입장에서 본다면 서원리 소나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정이품송 주변에 나무를 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이미지가 굳혀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요기를 위해서 홀로 서 있는 정이품송을 소나무의 기상이라고 칭찬하겠지만,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한없이 애처로운 일이다. 그리고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도 사람들의 욕심이 개입된 결과이지 나무가 자초한 것은 아니니 더욱 그렇다.
정이품송은 이런 결정에 한 번도 개입하지 않았다. 모두 사람들의 결정이다. 그리고 언제가 이 나무가 생명을 다하거나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면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에서 이 나무를 지워나갈 것이다. ‘일부러’가 아니라 관심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 또한 자연의 흐름이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나무는 나무와 같이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야 나무도 자연 속에서 생사고락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소나무는 사람의 개입이 절실히 필요한 나무다. 이 땅에 많은 소나무가 살아남은 것도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정이품송’처럼 관리하기 보다는 ‘정부인송’처럼 대우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것이 더 나무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