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고 산지 여수 금오도, 방풍막걸리·소주 생산
3번 증류한 소주, 젊은 층 좋아하는 ‘진’ 풍미 지녀

▲금오도 특산품인 방풍나물을 주재료로 막걸리와 소주를 빚고 있는 박재성·김유희 대표 부부가 지난 주말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주류박람회장 부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금오도 특산품인 방풍나물을 주재료로 막걸리와 소주를 빚고 있는 박재성·김유희 대표 부부가 지난 주말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주류박람회장 부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2월에 이슬을 맞고 처음 돋아난 방풍 싹으로 끓인 방풍죽은 사흘이 지나도 단맛과 향이 가득하다.”

조선 최고의 미식가였던 허균이 자신의 책 《도문대작》에 쓴 첫 문장이다. 그만큼 향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봄을 담은 나물 중 지금까지도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나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바닷가에서 자란 갯방풍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전국 방풍나물 생산의 80% 정도가 여수에 있는 금오도에서 나온다. 유명한 기도처인 여수 향일암에서 남쪽으로 내다보면 바로 앞에 있는 섬이다. 2016년 기준 1,579명이 사는 섬으로 돌산도 다음으로 여수에서 큰 섬이다. 전체 주민들은 방풍나물을 주로 재배한 덕분에 돌산 갓, 거문도 해풍쑥과 함께 금오도 방풍나물이 여수 3대 특산품으로 꼽히고 있다.

20여 년 넘게 방풍나물을 키워온 금오도에서 방풍나물로 맛과 향을 특화한 막걸리와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양조장의 연차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최고의 재료로 술을 빚는 곳이다. 금오도섬마을방풍도가(대표 박재성·김유희)가 그 주인공이다.

방풍을 넣은 막걸리를 처음 만든 곳은 강릉이지만, 방풍나물 최고의 산지인 금오도 방풍막걸 리가 등장하기 직전 명맥이 끊어져 실질적으로 국내 유일의 방풍막걸리 생산지가 되었다. 이와 함께 상압으로 3번 증류한 소주까지 만들고 있으니 방풍나물의 화려한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방풍막걸리의 특징은 쌉싸름한 맛에 모아진다. ‘쌉싸름’한 맛은 봄나물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잃었던 입맛을 되살려내는 맛이다. 일방적으로 쓴맛은 맛 자체를 해쳐 피하고 싶지만, 쓴맛의 정도에 따라 오히려 맛이 살아나 미식의 세계에서는 꼭 챙기는 맛이 된다.

지금이야 비닐하우스 재배가 가능해 연중 초록의 채소를 맛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시절에는 봄나물이 나와야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살릴 수가 있었다. 갯방풍은 그런 점에서 막걸리에 새로운 풍미를 더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갖는 부재료다.

▲여수 금오도는 방풍나물 주산지다. '금오도섬마을방풍도가'에서는 이 나물을 부재료로 써서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 방풍밭을 배경으로 찍은 막걸리 3형제다.
▲여수 금오도는 방풍나물 주산지다. '금오도섬마을방풍도가'에서는 이 나물을 부재료로 써서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 방풍밭을 배경으로 찍은 막걸리 3형제다.

금오도섬마을방풍도가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20년의 일이다. 방풍나물 생산량이 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방법을 모색하다가 나물의 향을 살릴 수 있는 술을 생각해낸다. 여수시 농업기술센터와 경동대학교의 도움을 받아 최적의 양조 방법을 개발하고 본격적인 양조를 위해 술도가를 차리게 된다.

생산하는 술은 막걸리와 소주 두 종류이며 각각 세 종류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막걸리는 일반 ‘방풍막걸리(알코올 도수 6%)’와 ‘프리미엄막걸리(10%)’, 그리고 찹쌀을 넣은 ‘찹쌀방풍막걸리’를 만든다. 모든 막걸리는 3양주로 빚는다. 발효와 숙성 기간은 합쳐서 한 달이다. 그리고 핵심 부재료인 방풍나물도 7.7%를 넣는다. 그것도 즙을 내서 사용한다. 그래야 온전하게 향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풍소주는 상압증류기로 3번 증류해서 최소 3개월 이상 숙성한 뒤 병입을 한다. 알코올 도수을 달리해 18%(오동도), 25%(금오도), 45%(거문도)를 생산하고 있다. 양조를 담당하고 있는 김유희 대표는 감압으로 증류할 경우, 방풍 향을 제대로 살릴 수 없어서 상압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맛을 챙기기 위해 다양한 시도 끝에 동증류기로 두 번 더 증류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수율이 떨어져도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소주는 도수가 높아도 목넘김이 좋은데다 방풍 향까지 제대로 담아냈다. 요즘 유행하는 잘만들어진 ‘진’을 보는듯하다. 입에 머금는 순간 해산물이 생각난다.

금오도에는 ‘비렁길’이라는 이름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동백나무 터널길과 소사나무 군락지 등 남해안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게다가 한때 매실 농사를 짓기도 해서 봄이면 매화까지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멋진 ‘비렁길’을 걷고 난 뒤 방풍막걸리로 목을 축이자. 경치와 술이 제대로 궁합을 이룬다. 2월이면 동백꽃이, 그리고 3월이면 매화가 가득한 곳이다. ‘방풍막걸리’를 마시기 딱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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