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복 방식, 셰리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숙성시켜
유럽식 지향, 독일대사관 행사 만찬주로 자주 채택돼

경기도 가평에 있는 맥주양조장 ‘크래머리’는 유럽스타일 맥주를 전문으로 생산한다. 사진은 이원기 대표가 베럴에이징하는 숙성고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다. 배럴 중에는 크래머리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알코올 도수 25%의 아이스복 오크통도 있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맥주양조장 ‘크래머리’는 유럽스타일 맥주를 전문으로 생산한다. 사진은 이원기 대표가 베럴에이징하는 숙성고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다. 배럴 중에는 크래머리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알코올 도수 25%의 아이스복 오크통도 있다.

알코올 도수 4.5%의 맥주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증류주에서나 볼 수 있는 30%가 넘는 맥주 이야기는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맥주가 실재한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양조장 ‘크래머리(대표 이원기·이지공)’에선 알코올 도수 17%와 25%, 그리고 31.5%의 맥주 3종류가 셰리 오크통에서 1년 넘게 숙성 중이다.
 
그렇다면 발효주인 맥주가 어떻게 증류주의 도수까지 낼 수 있는 것일까. 방법은 ‘동결증류’다. 물과 알코올의 어는 온도가 다른 점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맥주를 얼려서 얼음을 제거하는 형태로 만들면 얼지 않은 맥주만 농축되어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독일 뮌헨공대에서 양조를 공부한 이원기 대표는 17%의 맥주는 세 차례 정도, 그리고 25%의 맥주는 10번 이상 얼려서 얼음을 제거하며 술을 완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드는 공정이 어렵기보다는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맥주다. 

이 맥주의 스타일은 ‘아이스복(Eisbock)’이다. 독일에서 우연히 제조법을 발견한 맥주 스타일이다. 맥주는 제조공정을 거듭할수록 농축미를 갖게 되는데, 맥아 시럽의 진한 질감과 짙은 색을 특징으로 갖는다. 특히 이 맥주는 크래프트 맥주 붐이 일면서 다시 살아나, 독일(쇼르쉬)과 영국(브루독)의 양조장들이 경쟁적으로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크래머리 양조장이 유일하게 한정판으로 생산하고 있다.

가평 크래머리는 브루어리와 펍을 겸한 장소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독일스타일 맥주는 독일대사관 행사에서 만찬주로 사용될 정도로 술맛을 인정받고 있다. 사진은 펍 내부에 전시하고 있는 유럽 스타일 맥주의 일부다. 캔과 병에 든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가평 크래머리는 브루어리와 펍을 겸한 장소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독일스타일 맥주는 독일대사관 행사에서 만찬주로 사용될 정도로 술맛을 인정받고 있다. 사진은 펍 내부에 전시하고 있는 유럽 스타일 맥주의 일부다. 캔과 병에 든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크래머리가 이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부터다. 이 대표는 “자신의 맥주 취향이 고도주다 보니 만드는 술마다 알코올 도수가 높았다”며 “아이스복은 아예 알코올감을 중시하는 맥주여서 더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결증류를 거친 맥주는 알코올과 단맛도 함께 농축되어 술맛은 더욱 묵직해지고 향기 성분도 응축되어 일반 증류주와 전혀 다른 결의 맛을 낸다. 특히 이 대표는 이 맥주를 셰리 오크통에 넣어 1년 이상 숙성시키고 있다.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력과 정성만큼 가격을 책정할 수 없어서 상업적으로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맥주지만 “이런 맥주도 만들고 있구나”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5년째 술을 빚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양조장에선 아이스복만 배럴 숙성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있는 12개의 오크통에는 젖산발효를 시킨 후 바질이나 라즈베리 등의 부재료로 향을 보탠 사워 맥주와 알코올 도수 11%의 임페리얼 스타우트와 발리 와인도 들어가 있다. 이 맥주들은 크래머리의 크래프트 정신을 대표하는 맥주이면서, 편의점 맥주와 차별화된 프리미엄 맥주로 판매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맥주 양조를 독일에서 배운 만큼 유럽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술을 빚고 있다. 미국식 맥주보다 몰트와 효모 등에서 만들어지는 풍미를 더욱 중시하는 맥주를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 덕분에 평창올림픽 기간에는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의 선수단 만찬주로 크래머리의 술들이 쓰였으며, 매년 독일대사관의 주요 행사 때마다 필스너와 바이젠 등의 정통 독일식 맥주를 공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맥주 맛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대표의 2024년 목표는 증류주에 맞춰져 있다. 유럽 스타일 맥주를 잘 만든다는 이미지와 함께 맥주 양조장에서도 좋은 증류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시범 증류를 해 온 이원기 대표는 이달 중에 500리터급 증류주를 설치하고 보리를 베이스로 하는 일반 증류주를 생산할 예정이다. 젊은 소비자들의 기호를 고려해서 증류주의 맛은 부드러움에 맞춰져 있다. 

양조장의 최고 미덕은 다양한 주종에 있다. 브루어리에서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증류주까지 갖추게 된다면 가평 크래머리의 상상력은 더 넓게 펼쳐질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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