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처럼 솟은 큰 바위틈 메우고 세운 지혜의 전각
관악산 상징처럼 연중 붉은 연등으로 존재감 드러내

서울에 눈이 내린 날 관악산 연주대 응진전을 찍은 사진이다. 사철 붉은 연등을 달고 있는 응진전은 관악산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다.
서울에 눈이 내린 날 관악산 연주대 응진전을 찍은 사진이다. 사철 붉은 연등을 달고 있는 응진전은 관악산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다.

시루떡의 켜를 옆으로 세운 듯 길게 선 바위가 위태로운 산의 정상을 알린다. 첨탑처럼 우뚝 선 바위 옆으로 고개 숙인 바위 몇이 서열을 인정하듯 아래로 서 있고, 그사이에는 결을 달리해 크고 묵직한 바위부터 차곡히 쌓아 올려 위태로운 바위 무더기 위에 평지를 다지고 겨우 전각 하나 세울 땅을 만들었다. 세로로 곧게 솟은 바위 모양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서인지 누군가는 이를 불꽃바위라 부르기도 하지만 관악산 능선길에 같은 이름의 바위가 있으니 더는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각이 이미 바위와 함께 이미지를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처마 밑으로 사철 연등이 달려 있어 붉은색 인상으로 더 기억되는 관악산 연주대에 있는 응진전 이야기다. 응진전은 그 아래에 있는 연주암에 딸린 전각이다. 외떨어져 있어 흔히 다른 암자로 착각하지만 말이다.
 
서울대나 과천에서 연주암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다 보면 응진전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이 자리에 도착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응진전을 사진에 담아내려고 한다. 이유는 전각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과 위태로움 때문이다. 연주대의 높이가 629m이니 아마도 응진전이 서 있는 바위들도 600m 정도는 족히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높이에 한쪽은 정상에서 내려와 바로 만나는 뾰족한 바위이고 반대쪽은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절벽이니, 그 틈바구니에 서 있는 모습이 어찌 신기롭지 않겠는가. 그것도 50m는 족히 될 바위 무더기 위에 있으니 그 모습이 꼭 ‘백척간두’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 관악산의 전망 포인트는 응진전에서 사위를 바라볼 때라고 한다. 좁디좁은 외길로 난 길을 따라 응진전에 다다르면 전각 앞과 좌우는 뻥 뚫린 하늘과 땅이 가득 채우게 된다. 과천 시내를 넘어서 청계산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그만그만한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곳이 깎아지른 절벽 위다.
 
어느 산이든 높이를 차지하면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눈 아래 펼쳐지는 경치에 소유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오른 높이에서 소유욕을 채우게 된다. 가질 수는 없지만, 마치 그 순간은 가진 것처럼 느끼는 착각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하필 그 감정을 느끼는 공간이 응진전이다. 응진전은 불자들에게 ‘나한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나한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 삶을 어지럽히는 번뇌와 각종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방을 얻은 사람. 아마도 최고의 나한은 부처일 것이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 그 귀함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산 중 하나가 관악산이다. 응진전에도 가을이 들었다. 붉은 연등을 달고 있는 모습이 가을 단풍과 한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 그 귀함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산 중 하나가 관악산이다. 응진전에도 가을이 들었다. 붉은 연등을 달고 있는 모습이 가을 단풍과 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높이에서 허상을 채우고 있는데, 전각은 지혜로움을 말한다. 어쩌면 죽순처럼 솟은 바위 위에 응진전을 세운 까닭이 여기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세속의 때를 벗어던지고 제대로 삶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위태로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한 발을 더 내디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관악산은 요즘 사람들만 오른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이 산을 찾았다. 그중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도 이 산을 자주 올랐다. 그가 남긴 시 중에서 봄에 연주대에 올라 한강과 도성을 내려보던 때의 것이 하나 있다.
 
“먼 묏부리 한 가닥에 실버들 천 오라기/갈매기 해로라긴 물안개와 성긴 빗속에 있네/용산 입구로 배 돛을 올리니/서녘 바람 고이 불고 썰물은 느릿느릿”

제주도 귀양을 마치고 말년을 과천에서 보내면서 자주 찾은 산이 관악과 청계라고 한다. 당시 그의 심정이 시상에 가득 담겨있다. 연주대에 올라 한강을 살펴보며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시에 녹인 듯하다. 

응진전을 지척에 둔 곳에서 추사는 서풍이 부는 한양 땅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을까, 추사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돛단배에 시선이 머물고 있다. 하지만 그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허상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시를 지은 얼마 후 봉은사를 찾아 구족계를 받은 것을 보면 말이다. 응진전은 항시 그 자리에 있다. 연주대에 오른 사람의 마음이 어떻든 응진전은 지혜로움만을 이야기할 것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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