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에 싹 틔울 순 보호 위해 봄까지 달고 있어
감태나무도 참나무 형제처럼 봄 돼야 낙엽 떨궈

참나무는 겨울이 돼도 잎을 떨구지 않는다. 봄에 싹을 내는 새순을 끝까지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문경 주흘산 등산로에서 만난 떡갈나무다. 바람이 거세도 잎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참나무는 겨울이 돼도 잎을 떨구지 않는다. 봄에 싹을 내는 새순을 끝까지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문경 주흘산 등산로에서 만난 떡갈나무다. 바람이 거세도 잎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겨울이 돼도 낙엽을 떨구지 않는 나무들이 있다.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 이파리는 만지면 바로 부서질 만큼 뒤틀리고 메말라 있지만, 모질게 부는 겨울 북서풍도 이겨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나무 여섯 형제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특히 더 그렇다.

잎은 식물의 핵심 생명 활동인 광합성을 하는 공장이다. 하지만 식물의 생육에 가장 큰 적인 추위가 올 기미가 느껴지면 나무는 바로 잎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떨켜 세포를 만들어 수분공급을 차단하고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을 나무에 보내는 일도 서서히 멈춘다. 따뜻한 날씨를 기약하며 깊은 겨울잠에 들어가는 것이다.

참고로 떨켜 세포는 햇빛, 물, 대기오염물질 등 다양한 이유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식물 내부의 요인으로 식물호르몬이 떨켜 세포 생성을 막을 수도 있고, 젊고 건강한 나뭇잎은 잎자루에 계속 옥신이라는 물질을 공급해 떨켜 세포 형성을 더디게 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대체로 나무는 자연의 질서에 맞춰 기온과 햇빛의 요인으로 떨켜 세포를 형성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단풍과 낙엽을 통해 처음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눈에는 봄꽃처럼 아름다운 단풍이고, 온갖 감성을 자극하는 낙엽이지만, 식물은 화려한 봄을 위해 쇠약해진 자기를 가감 없이 보여줘야 하는 잔혹한 계절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모든 나무는 추위가 다가오면 생명활동을 일부 중지한다. 잎에서의 광합성 활동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단풍이 들어 떨어진 느티나무 잎이다.
모든 나무는 추위가 다가오면 생명활동을 일부 중지한다. 잎에서의 광합성 활동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단풍이 들어 떨어진 느티나무 잎이다.

그런데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떨켜 세포를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 나뭇가지와 연결되는 잎자루의 끝부분에 녹색의 살아있는 세포가 1~2월까지도 남아 있다. 이와 함께 떨켜 세포의 관다발이 나무와 연결되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수분과 양분을 교환할 수 있을 만큼 나무와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유지하지는 않지만, 완전한 단절도 하지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니 바짝마른 잎을 매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심지어 나무는 이 과정까지 오는 동안 잎에 남아 있는 질소와 인산, 칼륨 등의 잔류 영양분을 빠짐없이 회수한다. 모진 모습이 어찌 보면 꼭 악덕 사채업자처럼 보일 수 있다. 잎에 남은 양분이라고는 회수하기 힘들어 포기한 탄소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질소는 모든 단백질의 필수요소이며, 효소의 주요 구성 물질이다. 그리고 인산은 열매를 살찌우고 모양을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칼륨은 물질의 흡수 기능과 세포막의 기능을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나무 입장에서는 생명 활동에 도움이 안 되는 잎에 필수 영양분을 둘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 정도 대우를 받는다면 아마도 잎은 미련을 두지 않고 나무를 떠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참나무는 모질게 인연을 이어나간다. 한겨울 산행을 하면서 만나는 신갈나무나 떡갈나무를 보면 무척이나 을씨년스럽다. 떨어지지 않은 갈색 나뭇잎의 모습이 처연하기까지 느껴진다.

이쯤 되면 생각해 볼 문제다. 영양분까지 다 회수했는데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잎을매달고 있는데도 에너지는 들어가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참나무가 잎을 떨구지 않는 까닭은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아주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한다. 이파리가 떨어지지 않으면 이듬해 봄에 싹을 틔울 눈이 마르는 것을 막아주는 효
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겨울 산에 잎을 떨구지 않은 나무가 참나무 정도일까. 그렇지는 않다. 새봄이 올 때까지 잎을달고 있는 나무는 더 있다. 녹나무과의 감태나무가 그렇다. 녹나무과의 나무는 주로 남쪽 해안지역에 사는 상록의 나무들이 많다. 잎이 두껍고 윤기가 흐르는 아열대의 상록수들이라고 보면 된다. 감태나무가 잎을 매달고 있는 이유도 참나무와 같다. 어린 눈을 봄까지 잘 보호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모성애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보잘것없는 모습이어도 그렇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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