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스토리 들으며 즐기는 삼양주의 맛과 멋
서애 유훈으로 남긴 주방문, 술 더 풍요해질 듯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 류성룡 충효당종택에서 가양주 기반의 술 ‘옥연’을 지난해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안동에서 열렸던 안동전통주박람회때 찍은 15대 종손인 류창해 대표와 이혜영 종부의 모습이다. (사진=충효당)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 류성룡 충효당종택에서 가양주 기반의 술 ‘옥연’을 지난해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안동에서 열렸던 안동전통주박람회때 찍은 15대 종손인 류창해 대표와 이혜영 종부의 모습이다. (사진=충효당)

낙동강이 모래톱을 감싸 안으며 밖으로 휘돌아 흐르는 모습을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가져온 안동 하회(河回)마을에서 가양주 방식으로 빚은 우리 술이 지난해 출시되었다. 술 이름은 ‘옥연(玉淵)’이다. 풀어쓰면 ‘옥빛 연못’이라는 뜻이다. 

하회마을을 가본 사람이라면 어디에 연못이 있느냐며 말을 건넬 수도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의 모래톱은 갈대밭을 끌어안으며 흐르는 강물이 수백 년 동안 만들어낸 퇴적물이라는 것을 고려하고 봐야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하회마을은 강물 주변 저지대에 여러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하회마을 최고의 조망지인 ‘부용대’ 옆 자락에 있는 ‘옥연정사(玉淵精舍)’ 앞에 있었고, 그 이름을 술 이름으로 가져온 것이다. 물론 시간과 함께 흘러온 모래가 덧쌓이면서 지금은 연못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말이다. 

‘하회마을’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으니 ‘옥연’의 출생에 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맞다. ‘징비록’의 저자인 서애 류성룡 집안의 술이 대문 밖으로 나와 세상과 만나고자 한다. 

충효당에서 만들고 있는 ‘옥연’은 집안의 술을 좀 더 세련되게 빚기 위해 삼양주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현재는 약주를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고, 조만간 증류주인 소주도 일반에 판매할 예정이다. (사진=충효당)
충효당에서 만들고 있는 ‘옥연’은 집안의 술을 좀 더 세련되게 빚기 위해 삼양주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현재는 약주를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고, 조만간 증류주인 소주도 일반에 판매할 예정이다. (사진=충효당)

서애 류성룡의 15대손인 충효당 종택의 류창해(67) 대표는 서애 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했던 ‘옥연정사’에서 술 이름을 따와, 집안에서 제주로 써오던 술을 세상에 내놓았다. 

충효당 전경
충효당 전경
충효당 종택의 사랑채 전경
충효당 종택의 사랑채 전경

‘정사(精舍)’는 거주를 목적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학문을 연구하거나 제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 공간이다. 때로는 인근 지역의 문인들과 시회(詩會)을 열고 주연을 베풀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류 대표는 종택의 술에 ‘옥연’을 붙였다. 벗들과 술을 나누었던 서애 선생의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생산하고 있는 술이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류 대표의 모친인 최소희(96) 여사는 경주 최씨 집안 출신이다. 자연스레 교동법주의 제조법이 충효당 종가의 음식 문화와 합쳐지게 되었고, 그 비법은 이혜영 현 종부에게도 전해졌다. 여기에 류창해 대표가 차종손 시절, 대구의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익힌 전통주 제조법까지 보태졌다. 이 과정에서 이양주로 빚었던 집안의 술은 더 깊은 맛을 위해 삼양주로 제조법이 바뀌었다.

약주 ‘옥연’은 단맛이 중심을 잡고 있는 술이다. 저온에서 삼양으로 빚는다. 물도 많이 쓰지 않았다. 지난 2022년부터 술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한 끝에 현재의 맛에 닿았다. 류 대표는 처음 술을 기획할 때 약주와 소주, 막걸리 3종을 다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둘러 술을 내기보다 하나씩 준비해서 세상과 소통하며 술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는 약주에 치중하고, 차차 소주와 탁주로 영역을 넓힐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류 대표에겐 큰 숙제가 하나 놓여 있다. 서애 선생이 남긴 주방문이 최근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2022년 11월 일본에서 환수한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를 공개했다. 대통력은 지금의 다이어리와 같은 것으로 300본 정도가 인쇄돼 신료들에게 나눠줬던 왕의 하사품이었다. 이 ‘경자년 대통력’에 서애 선생은 아홉 가지의 주방문을 기록했다. 

집안에서 빚었던 술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기록 당시 서애 선생은 특정 필요에 따라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15대 종손이 이 메모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충효당종택의 술이 변화한다면 ‘경자년 대통력’이 그 동력이 될 것이다.

서애 선생은 송강 정철 등 여러 문인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두고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그때 서애는 “잠결에 들리는 술통에 술 떨어지는 소리”라고 답했다고 한다. 술 빚는 법 아홉 가지를 남긴 것은 그 아름다운 소리가 집안에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충효당 종택의 ‘옥연’은 다양한 스토리와 함께 세상에 소개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되었다.

‘옥연’에 어울리는 집안의 음식 이야기를 류 대표와 나누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불천위 제사 때 올리는 ‘중개(中介)’(약과) 이야기가 나왔다. 평소 서애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단맛의 옥연과 약과의 조합은 식사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디저트라 생각했다. 이에 류 대표는 서애 선생이 즐겼던 ‘초만두’와 마신다면 반주로서 훌륭한 음식 조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이 많으니 이야기가 더 풍성해진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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