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긴 안동 술 찾아 계속 세상과 연결할 계획
고려 개국주 ‘태사주’와 함께 안동 종가 술 7종 생산

안동 술의 가능성을 알리고자 종가의 술에 천착하고 있는 신형서 안동디스틸러리 대표가 최근 복원한 ‘태사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동 술의 가능성을 알리고자 종가의 술에 천착하고 있는 신형서 안동디스틸러리 대표가 최근 복원한 ‘태사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사와 손님맞이는 술 빚는 데서 시작한다. ‘봉제사접빈객’의 중심이 술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종가들도 그렇다. 그 덕분에 안동 음식문화의 결정체를 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술을 세상과 연결하는데 발 벗고 나선 이가 있다. 안동에서 ‘올소안동소주’를 만들던 신형서 대표다. 지난해 양조장의 이름도 아예 ‘안동디스틸러리’로 바꾸었다. 종가의 술을 생산하는 대표 증류소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술, 특히 종가의 술이 사라졌다. 하지만 70~80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고 술이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외형적으로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집의 음식문화 속에 종가의 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그 술을 찾아내 세상과 연결하고 싶었다.”

신형서 대표가 양조장 이름을 바꿔가며 안동 종가 술에 천착한 까닭이다. 그래서 그동안 만들던 술보다 안동지역 종가들이 가지고 있는 술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안동디스트틸러리의 신형서 대표는 안동의 여섯 종가의 증류주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왼쪽부터) 추로주, 노송주, 금계주, 숙영주, 가현, 이수동주다. 알코올 도수는 모두 35%다.
안동디스트틸러리의 신형서 대표는 안동의 여섯 종가의 증류주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왼쪽부터) 추로주, 노송주, 금계주, 숙영주, 가현, 이수동주다. 알코올 도수는 모두 35%다.

신 대표가 안동에 양조장을 차린 것은 지난 2016년의 일이다. ‘올소안동소주’라는 가성비 있는 안동소주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종가의 술을 세상에 꺼내는 일에 더 닿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종가의 분위기는 술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에 거부감이 강했다. 그래서 지역 유지를 일일이 만나가며 안동 술의 가능성을 설득하고 다녔다. 분위기 탓에 큰 성과는 없었다고 신 대표는 말한다.

그런데 3~4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종가의 술이 담장 너머로 건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농암종가의 ‘일엽편주’가 호평을 받으면서 종가들이 술을 대하는 태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 덕분에 그는 지난해부터 여섯 종가의 술을 증류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종택들이다.

의성김씨 학봉종가와 진성이씨 노송정종가, 원주변씨 간재종가, 한산이씨 소산종가, 의성김씨 지촌종가, 의성김씨 조성당종가가 그 주인공이다. 여섯 종가의 술 이름은 각각 ‘금계주’, ‘노송주’, ‘숙영주’, ‘가현’, ‘이수동주’, ‘추로주’다.

집안마다 내려온 주방문이 다르니, 같은 증류주라도 술맛은 모두 다르다. 예를 들면 퇴계의 태실이 있는 노송정종가에선 좁쌀을 넣어 술을 만들고 있고 간제종가에선 쌀과 보리를 7대3의 비율로 넣고 술을 빚었다, 이렇게 빚은 종택의 원주를 신형서 대표가 자신의 증류소에서 증류하고 있는 것이다.

증류소 한편에는 미국산 오크통에서 안동소주가 익어가고 있다.
증류소 한편에는 미국산 오크통에서 안동소주가 익어가고 있다.

빠른 곳은 양조장 공사에 나선 종가도 있지만, 본격적인 생산체계를 갖춘 곳은 한곳도 없는 상황이다. 증류주는 특히 더 그렇다. 따라서 양조시설을 갖추지 못한 종택의 입장에선 증류주를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고, 신형서 대표는 스토리가 가득 담긴 종가의 술을 생산하면서 양조장의 볼륨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을 얻게 된다.

이와 함께 신 대표는 고려의 개국주라 불리는 ‘태사주’의 복원 과정에도 직접 참여해 생산까지 책임지고 있다. 이 술은 안동소주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후삼국 시대의 술이다.

사연은 이렇다. 팔공산 전투 등에서 패배한 고려 태조 왕건은 견훤의 후백제군을 안동 병산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기선을 제압하게 된다. 그런데 안동 전투 승리의 이면에 고삼을 넣어 만든 ‘고삼주’가 있었다고 한다. ‘안중이라는 이름의 주모가 만든 이 술을 마신 후백제군을 왕건의 군대가 공격해 크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게다가 안동의 유력한 세 집안(김선평, 권행, 장길)은 왕건을 도와 고려 통일을 돕기까지 한다. 공을 인정 받은 이들은 모두 개국공신이 돼 ‘태사’라는 호칭을 얻었고, 그 역사는 안동에 있는 ‘태사묘’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안동디스틸러리의 ‘태사주’ 간판이 붙은 증류소 입구 풍경
안동디스틸러리의 ‘태사주’ 간판이 붙은 증류소 입구 풍경

태사주는 이렇게 안동 권씨와 장씨, 김씨 세 집안의 가양주로 1천 년 이상 이어져 내려오는 술이 됐다. 신 대표는 이 술을 복원해 안동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고자 했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해열, 이뇨, 소화촉진 작용을 가지고 있는 고삼이 중추신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식품공전’에 식용이 불가능한 식물로 분류돼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신 대표는 새로운 방식으로 고삼주의 맛을 재현키로 한다. 보리술과 고구마술, 찹쌀술 셋을 블렌딩해서 고삼주의 맛과 가장 가까운 술맛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 술을 증류해 ‘태사주’라고 이름 붙이고 지난해 말 세상에 내놓았다. 현재 태사주는 안동의 세 집안에서 모두 제주(祭酒)로 쓰고 있다.

태사주는 보리술의 쓴맛과 고구마술의 독특한 향과 단맛, 그리고 찹쌀술의 단맛이 합쳐진 술맛을 낸다. 쓰고 단 고삼주의 특성을 잘 담아낸 술이라고 신 대표는 말한다. 술맛을 찾은 신 대표는 정성으로 만든 만큼 이제는 판매에 모든 힘을 쏟을 계획이다.

물론 최근 만들어진 ‘안동종가가양주협의회’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종가의 술이 세상에 나오도록 하는 일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증류소에는 종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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