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식물 오해받지만, 따뜻한 남해안 자생
봄에 콩 크기 까만 열매 맺는 난대성 식물

팔손이나무는 난대성 식물이다. 그래서 남해안 일부 섬과 해안지역에서 발견된다. 경남 통영 비진도에는 팔손이나무 군락이 포함된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사진은 11월경에 핀 팔손이나무 꽃차례다.
팔손이나무는 난대성 식물이다. 그래서 남해안 일부 섬과 해안지역에서 발견된다. 경남 통영 비진도에는 팔손이나무 군락이 포함된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사진은 11월경에 핀 팔손이나무 꽃차례다.

한반도의 남쪽 해안지역은 위도가 낮은데다 난류의 영향까지 받아 난대성 수목이 잘 자란다. 동백, 후박, 비자 등 잎이 두꺼운 나무들은 상록을 자랑하며 남쪽 해안지역의 숲을 풍성하게 만든다. 오늘 소개하는 나무도 상록의 난대성 식물로 남부 해안지역에서만 자란다. 

잎의 모양이 손바닥을 펼친 것처럼 생겼는데, 여덟 개로 갈라져 있어 ‘팔손이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 마주치는 마로니에 나무가 잎의 모양 덕분에 칠엽수라고 부르는 것처럼 팔손이도 잎의 모양에서 이름이 만들어졌다. 팔손이는 하나의 잎이 8개로 갈라져 있지만, 하나의 이파리로 보이는 데 반해 칠엽수는 7개의 잎이 모여 있는 모양새이니 잎 모양새가 서로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팔손이나무는 언뜻 보면 잎의 모양이 어린 시절, 기름을 채취할 목적으로 초등학교에서 나눠줘 육종을 장려했던 피마자(아주까리)처럼 생겼다. 그런데 피마자는 인도가 원산지인 초본식물이지만 팔손이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해안에 자생하는 목본식물이다. 그리고 피마자는 다 커도 2m를 넘지 않지만, 팔손이는 잘 자라면 5m에 이르고 나무의 줄기도 어른 발목 굵기를 넘어설 만큼 자란다. 물론 타이완 원산으로 제주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통탈목’에 비해서 규모는 작지만 말이다. 
 
팔손이는 생김새 덕분에 얻은 이름이지만, 생김새 때문에 외래종으로 자주 오해받은 나무다. 따뜻한 중국 남부와 타이완, 인도까지 넓은 지역에 퍼져 자라는 나무이긴 하지만 팔손이는 우리나라의 거제도와 남해도 그리고 비진도 등에서도 자생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즉 남해안 지역이 이 나무의 북방한계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분별한 채취로 개체 수가 많이 줄었지만, 경남 통영의 비진도 바닷가에는 팔손이나무의 자생지가 포함된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기도 하다. 

팔손이나무는 겨울에 꽃이 피고 3~4월에 열매가 맺는다. 처음에는 콩 크기의 녹색열매가 열리고 점점 새까만 색으로 변해간다.
팔손이나무는 겨울에 꽃이 피고 3~4월에 열매가 맺는다. 처음에는 콩 크기의 녹색열매가 열리고 점점 새까만 색으로 변해간다.

팔손이를 처음 본 것은 선암매를 보기 위해 순천에 있는 선암사를 찾았을 때다. 무우전 돌담을 따라 핀 홍매와 백매를 보다가 독특한 모양새의 잎을 마주치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던 피마자를 연상시키는 나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때는 이 나무가 피마자인지 팔손이인지 구분하지 못했을 때다. 나중에 사진으로 찍어둔 팔손이를 식물도감과 비교해가며 팔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선암사에서 본 팔손이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매화가 피는 시절엔 산수유와 생강 등 봄꽃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채기에 눈길이 가지 않고, 꽃들이 다진 겨울에도 늘푸른나무들 사이에 있으니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겨울은 팔손이의 황금시대다. 이 계절이 되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11월경이면 생김새와 달리 듬직한 꽃차례가 원뿔형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꽃대는 우윳빛이고 암수가 함께 핀다. 처음 수꽃의 수술이 자라서 꽃가루를 만들어지면 수분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꿀향으로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암술이 기능하며 당도가 높은 꿀을 분비해 몇 안 되는 겨울 곤충을 유인한다. 생존을 위해 나름의 전략을 짜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은 근친교배를 막기 위함이다. 

이렇게 교배가 이뤄지면 이듬해 봄에 콩알 굵기의 열매가 익게 된다. 처음에는 녹색의 열매로 시작해 다 익으면 검은색을 띤다. 

팔손이나무는 기후변화에 따라 점점 육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선암사의 팔손이도 날이 따뜻해지면서 북상한 결과일 것이다. 요즘은 관상수로 많이 키우고 있는데, 중부 지역에선 화분에 넣어 아파트에서 키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 나무의 잎과 새싹은 기침과 가래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약방에서는 팔각금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사포톡신이라는 유독물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처방에 따라 식용해야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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