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속 타닌이 ‘먹’ 만들어 추상화 같은 그림 연출
독특한 무늬 가진 덕분에 전통목가구로 인기 여전

먹감나무는 나무에 수묵화같은 ‘먹’무늬가 있는 나무를 말한다. 무늬가 아름다워 예전부터 가구재로 많이 사용됐다. 사진은 경북 안동의 학봉종가 사랑채에 있는 먹감나무 장이다.
먹감나무는 나무에 수묵화같은 ‘먹’무늬가 있는 나무를 말한다. 무늬가 아름다워 예전부터 가구재로 많이 사용됐다. 사진은 경북 안동의 학봉종가 사랑채에 있는 먹감나무 장이다.

처음 박물관에서 ‘먹감나무’로 만든 전통 목가구를 봤을 때, 그 무늬에 많이 놀랐다. 어떻게 나무에 이런 무늬가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자연이 그려놓은 먹 무늬의 추상성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때는 먹감나무를 하나의 독립된 나무 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자료를 확인해보니, 먹감나무는 별도의 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나무 중 수묵 무늬를 가진 나무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마치 검은 먹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콩을 ‘선비잡이콩’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작명법을 보면 우리 민족은 ‘먹’을 참 특별한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매일같이 글을 쓰면서 사용한 문방구였으니 먹감나무의 무늬를 ‘먹’으로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자연이 만들어낸 무늬였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요즘처럼 손쉽게 인공의 무늬를 얻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먹감나무는 목수들에게 귀한 존재였다. 

먹감나무의 희귀성은 나무의 식생 조건에서 비롯되었다. 느티나무와 참나무처럼 흔히 보는 나무는 웬만한 조건이면 살아간다. 하지만 감나무는 햇볕이 잘 들고 바닷바람이 부는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부지방과 해류의 영향을 받은 영동지역의 강릉과 양양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즉 중부지방에서 자생하는 감나무를 만나기란 힘든 일이다. 

여기에 ‘먹’까지 보태져야 하니 먹감나무는 한마디로 희귀템이다. 더군다나 먹감나무를 구해도 ‘먹’이 들어간 부위가 온전해야 가구로 만들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천 그루를 베어야 한 그루 정도의 예쁜 나무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나 먹감나무 가구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힘들게 먹감나무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가구를 만들지는 않았다. 나무 재질이 단단하고 고른 편이었지만 건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검게 물든 ‘먹’ 부분과 하얀 나무 부분의 수축률이 서로 달라서 건조하다가 나무가 뒤틀리거나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여러 해 동안 자연건조 시킨 뒤에나 목가구 작업에 들어갔다. 

먹감나무는 나무 속에 있는 탄닌의 흔적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편의 그림처럼 먹감나무의 무늬를 즐겼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나무결 설명이다.
먹감나무는 나무 속에 있는 탄닌의 흔적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편의 그림처럼 먹감나무의 무늬를 즐겼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나무결 설명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검게 물든 먹감이 생긴 것일까.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도 명확하게 이유를 밝히지는 못한 듯하다. 나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폴리페놀 성분을 갖고 있다. 감나무의 대표적인 폴리페놀 성분은 ‘탄닌’이다. 덜 익은 감을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채워지는 떫은맛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포도주를 마실 때 이야기하는 탄닌과 같은 물질이다. 

먹감나무의 ‘먹’ 부분은 바로 ‘탄닌’이 축적된 자국이다. 산소와 햇빛, 그리고 수분 등의 영향으로 산화된 결과 흑색화되었다는 설이 있고, 미생물이 효소를 분비해서 중합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 됐든 먹감은 나무가 특정 상황에 부닥쳐 자기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먹감을 아픔에 대한 상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작고한 시인 전우익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에서 “감을 딸 때 가지를 한 알 한 알 따는데 가지마다 상처를 입게 되지요. 그 상처로 빗물 같은 것이 스며들어 이루어진 멍자국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먹감나무 무늬지요.”라고 말하고 있다. 

먹감은 지금도 귀한 가구재다. 먹감의 조형미를 높이 산 목수는 나무의 결과 무늬를 잘 배치가 가구로 만들었다. 장과 농, 문갑과 사방탁자, 연상 등의 가구로 태어나면 그다음은 돈 있는 자들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먹감나무 가구를 박물관에서 주로 만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귀한 대접을 받는 나무임은 분명하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