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매화마을’ 쫓비산은 하얀색 매화가 뒤덮고
구례 화엄사 각황전 옆 흑매, 3월 말까지 꽃대궐

광양 다압면에 있는 매화마을 전경이다. 올해 23회째 열린 매화축제 마지막날인 지난 17일의 사진이다. 아직도 매화가 펴 있어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양 다압면에 있는 매화마을 전경이다. 올해 23회째 열린 매화축제 마지막날인 지난 17일의 사진이다. 아직도 매화가 펴 있어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도에 봄이 왔다. 매화와 산수유가 첨병이 되어 봄을 안내하고 있다. 지자체에선 꽃축제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고, 심지어 남도의 꽃축제는 끝났는데도 꽃은 여전했다. 3월이 다할 때까지는 찾는 사람들이 이어질 듯하다. 그 매화가 서울 필자의 집 앞에도 꽃이 핀 것을 보면 봄은 벌써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남 광양 다압면에 있는 쫓비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화마을을 품 안에 안고 있다. 홍쌍리 여사의 매실농원을 중심으로 올해 23번째 축제가 진행됐다. 백매와 홍매, 그리고 청매와 흑매가 가지마다 구름처럼 꽃을 피워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매화마을을 찾아와 섬진강변 도로가 주차장이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표정은 봄을 먼저 만난다는 생각에 밝기만 하다. 심지어 지역축제 때마다 눈살 찌푸리게 했던 바가지요금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다. 광양시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무척 노력한 덕분이라고 한다. 

봄꽃은 향기가 없다. 벚꽃이나 개나리, 진달래 등의 꽃을 떠올려보자.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인간의 후각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매화는 그렇지 않다. 꽃이 피면 향기로 매화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송나라 때 시인 임포는 그의 시에서 매화를 ‘암향(暗香)’이라고 노래했다.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에 떠다니네”라는 구절이다. 매화의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윽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상황을 임포는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매화를 보고자 했던 시인묵객들은 하나같이 교교한 달빛 아래 핀 매화를 으뜸으로 쳤다. 1950년 전쟁 중에 월북한 김용준(당시 서울대 미대 교수)은 자신의 수필집 《근원수필》에서 매화가 구름처럼 핀 집에 찾아가 달빛 아래에서 완상하기를 청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황혼의 달빛과 그윽하게 퍼지는 향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흑매화는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길상암 앞에 있는 들매와 함께 두 그루의 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다. 4월초까지 매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각황전 주변 벚꽃과 함께 즐기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흑매화는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길상암 앞에 있는 들매와 함께 두 그루의 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다. 4월초까지 매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각황전 주변 벚꽃과 함께 즐기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매화가 숲을 이루고 있으면 더는 ‘암향’이 아니다. 특히 홍매화나 흑매화는 더 진한 향을 지니고 있다. 물론 꽃의 빛깔도 도드라지니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기왕에 흑매 이야기를 했으니,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새롭게 지정된 구례 화엄사 각황전 옆 흑매 이야기를 하자. 광양의 매화는 숲의 매화라면 화엄사의 매화는 고목의 매화다. 탐매의 기세를 몰아 광양에서 구례 화엄사를 찾아 흑매를 만났다. 

단청이 거의 사라진 각황전이 해에 한 번 활짝 단청을 들이는 때가 지금이다. 붉다 못해 검붉다고 표현하는 흑매는 보기에도 고혹적이다. 각황전의 장중한 모습도 봄을 찾는 사람들에겐 작게만 느껴지는 듯하다. 모두 찾아가는 곳이 흑매이니 말이다. 그래서 화엄사는 지금 매화보다 사람이 구름처럼 핀 곳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발길을 돌리면 안 된다. 흑매는 화엄사 매화의 절반일 뿐이다.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원조 ‘화엄매’는 구층암으로 올라 모과나무 기둥을 지나 몇걸음 더 발품을 팔아야 볼 수 있다. 이 매화는 야생의 매화다. 그래서 ‘들매’라고 부른다. 야생의 매화는 꽃이 작지만 향기는 더 짙다고 한다. 물론 들매는 햇볕이 잘 드는 높은 나뭇가지에만 꽃이 피어 향기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날짐승들의 몫이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산속에서 제하고 싶은 대로 가지 뻗어가며 꽃이 핀 모습을 보면 ‘이게 자연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올해는 꽃소식이 이르다고 한다. 그런데, 남도의 매화는 3월까지는 피어 있을 듯하다. 향기를 담고 있는 매화 여행은 이때가 딱 좋은 시절이다. 남도가 아니어도 좋다. 서울에도 매화거리가 있다. 남산의 와룡매는 지난해 강풍으로 크게 다쳐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봉은사의 매화도 이름값을 하고 있다. 수도권에 산재해 있는 수목원의 매화도 볼만할 것이다. 

김용준은 《근원수필》에서 “십 리나 되는 비탈길을 얼음 빙판에 코방아를 찧어가면서” 찾아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 빙판에 코방아 찧을 일은 없을 것이다. 꽃샘추위도 사려졌으니 더욱 그렇다. 매화는 바라보면서 즐긴다는 ‘완상’이 딱 어울리는 감상법이다. 벚꽃처럼 자발스럽지 않으니까 말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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