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레이스 스타트

전 현직 BOJ 총재 상반된 입장
구로다, 양적완화정책 적극 시행

<대한금융신문=김민수 기자> 지난달 21일 취임한 일본은행(BOJ)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신임 총재가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전 총재와는 다른 통화정책 행보를 보여 국제금융업계 관심을 끌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20년 간 침체된 자국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정부의 국채나 다양한 금융자산을 사들여 시장의 돈을 늘리는 통화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히며 화끈한 돈 풀기에 나섰다. 그가 공언한 연간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다.

◆구로다 ‘아베노믹스’ 밀어 부치기
구로다 총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새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적극 돕겠다고 나섰다. 신임 총리의 의견을 전격 수용하고 일본은행도 그에 상응하는 액션을 취하겠다는 일종의 충성심에서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 선거연설 과정에서 “운전기를 돌려서라도 엔화를 찍어 내겠다”고 말하는 등 양적완화정책의 확대를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우선 구로다는 시장에 돈을 푸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시장에 풀리는 돈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지난 3일 일본은행은 높은 양적완화정책을 지향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합의하고 향후 월간 국채매입을 기존의 2배인 7조엔으로 증액해 연간 매입 규모를 약 50조엔씩 늘려나가기로 했다.

또 현행 3년 이하로 제한된 매입대상 국채의 만기를 없앴으며 최소 2년에서 최대 40년 국채, 변동금리 및 물가연동 국채도 매입대상에 포함할 계획이다.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REIT)도 각각 연간 1조엔과 300억엔씩 확대 매입하고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매입 등도 확대한다.

일본은행은 이를 통해 연간 통화 증가 목표치를 연간 60~70조엔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일본은행의 화끈한 통화정책에 일본 산업계와 학계에서도 양적완화정책 확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은 통화팽창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존의 통화정책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국 등 저비용 생산국가 기업들에게 뺏긴 사업 영역을 되찾고 설비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엔화가치의 절화가 불가피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시라카와, 구로다에 쓴소리
구로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나는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전 일본은행 총재는 퇴임 전 기자들을 만나 양적완화정책을 확대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려는 것은 “허공에 주먹질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아베노믹스 정책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이다.

시라카와 전 총재가 분석한 일본 경제 침체 이유는 인구감소로 인한 수요 위축이다. 때문에 아무리 통화량을 늘린다 하더라도 경기주체들이 차입을 확대하지 않는 한 디플레이션 극복은 어렵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특히 그는 미국, 유럽 등의 중앙은행이 실시한 통화정책이 일본에서는 구조상 발생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적완화정책 확대, 득인가 실인가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정책 확대가 일본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어떻게 작용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정책이 성공할 경우 지난 2010년 GDP 순위에서 중국에 추월당해 세계 3위로 밀려난 일본이 다시금 중국경제에 대한 대항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실패할 경우 일본 국채시장과 금융시스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음은 물론 과거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불황을 맞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일본의 GDP 대비 공적채무 비율이 237%에 달하는 만큼 정부의 차환능력까지 약화되면 국내자금이 해외로 이탈해 그리스와 유사한 국가부도 사태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일본은행의 새로운 통화정책 실험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자산버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정건전화와 경제개혁 등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며 “이와 함께 미국과 유럽 등의 사례를 바탕으로 정책강도를 단계별로 유연화하고 경기후퇴를 대비한 출구전략을 사전에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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