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론, 은행권 IT투자 위축시킬 듯
불확실성 높아져 사업 연기 불가피
2차 구조조정과 유사한 결과 예상돼


은행 합병 논의가 새로운 회계연도를 준비하는 금융권을 달구고 있다.

주초에 재경부에서 흘러나온 자발적 합병론은 다음날 제일은행과 하나은행간의 합병 추진 논의로 이어지더니 살길이 확실하게 잡혀 있지 않은 은행이나 대형은행의 틈바구니에서 시급히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은행들의 합병설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처럼 합병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우리금융지주회사와 통합국민은행의 출현으로 은행권의 경쟁이 ‘규모’를 축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확실한 비교우위요소를 확보하지 못한 은행들은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합병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해에 펼쳐진 2차 구조조정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어 실제 결실을 맺는 합병설은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중반부터 차가운 겨울까지 진행된 구조조정의 결과 나타난 합병은행은 대형화로 치닫는 국민은행과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유일하다.

나머지 하나-한미은행의 합병논의나 조흥, 외환, 기업은행 등을 축으로 하는 합병설은 말 그대로 설로 끝나고 말았으며 논의기간 동안 제대로 IT투자를 하지 못해 프로젝트가 집중되는 선례를 만들고 말았다.

따라서 올 연말에 이어지고 있는 합병설의 경우도 뚜렷한 근거를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되고 있어 지난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가장 먼저 대두된 제일은행과 하나은행간의 합병논의는 규모의 확대 이외에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조합이다.

물론 네트워크 중심의 금융회사를 목표로 핵심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하나은행 차원에서는 제일은행의 브랜치 및 리테일 기반에 욕심을 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문화적 이질감에 대한 부담을 떨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각종 경제연구소 및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두 은행의 합병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표시하고 있다.

금융시장 전체 측면에서도 제일-하나 조합은 뉴브리지 캐피탈의 지분 매각을 의미하므로 정부차원에서도 달가워할만한 조합은 아닌 것이다.

또한 뉴브리지 캐피탈이 제일은행에서 손을 턴다는 것은 결국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활동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이벤트이므로 향후 자본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금융권 동향을 살펴보면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조합이기도 하다.

새로운 은행장을 영입한 한미은행이나 지주회사 체계로 조직을 변경한 신한은행 등 경쟁력을 갖춘 은행이나 자구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조흥, 외환은행 등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기 전까진 자발적으로 합병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아직까지 대형은행 출현에 따른 시장판도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대형은행들이 구하고 있는 규모의 경제를 보여줄 만큼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며 전산적인 측면에서도 통합시스템 및 고객통합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마케팅 효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향후 이같은 이벤트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은행 경영진들이 미리 대비하기 위해 합병논의를 수면 하에서 진행할 가능성은 있지만 실질적인 결실은 내년 여름이 지나야 나올 것이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합병론은 결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시켜 은행권의 각종 투자를 위축시키는 효과만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직 확실한 자구방안 모색이 이뤄지지 않은 은행이나 정부의 입김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은행들의 IT투자는 급랭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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