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걸리면 그만, 남들 다 하는데”…범죄 취급 못 받는 ‘보험사기’

솜방망이 처벌, 보험사기 부추겨…보험료 인상으로
처벌강화·적발시스템 마련·사회적 ‘인식전환’ 시급

 
# 전북에 위치한 A병원 이사장과 임원, 사무장, 의사 3명은 보험설계사와 공모해 허위입원환자 1명당 사례금 10~2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설계사가 모집한 110명의 허위입원환자를 통해 건강보험 요양급여 26억원을 편취했다. 허위로 입원한 환자들은 보험사로부터 총 8억3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아 사기에 동참했다.

# 부천에 위치한 B대학병원 의사 C씨는 4곳의 손해사정업체와 공모해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보험금을 더 많이 받게 해주겠다고 접근, 허위과장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해 지급받은 보험금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형식으로 보험금을 편취했다. 이 과정에서 23명의 손해사정사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편취한 금액은 총 17억5000만원, 후유장해진단서 발급 조건으로 건당 20만원씩을 받아 챙긴 C씨는 총 1억4000만원을 편취하다 지난달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덜미를 잡혔다.

<대한금융신문=김미리내 기자> 대한민국이 보험사기로 멍들고 있다. 보험사기가 날로 조직화·지능화 되면서 적발 규모도 급격히 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보험사기를 ‘범죄’라기 보다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310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869억원)과 비교해 8.2% 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은 5997억원으로 혐의자가 8만4385명에 이른다.

금융당국이 해마다 ‘보험사기 척결 특별대책’을 마련해 불법사무장병원, 허위·과다입원 환자 등 기획조사를 강화하면서 매년 10% 가량 보험사기 적발이 늘고 있지만 4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보험사기 추정금액에는 훨씬 못 미치는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보험사기는 조직화·지능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을 통해 청소년부터 가정주부, 일반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독버섯처럼 사회전반에 번져가고 있다”며 “최근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나 존속살해를 저지르는 등 보험사기가 흉포화 되면서 윤리의식이나 생명존중 가치관을 파괴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초기 사기혐의자 비중이 높았던 40대 이하 남성은 꾸준히 감소하는데 반해 50대 이상 고연령층(39.2%)과 여성(28.5%)의 비중은 매년 증가해 성별과 연령을 초월해 번지고 있다. 또한 회사원, 자영업자 등의 사기혐의자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한번 보험금을 편취한 경험이 있는 경우 ‘쉽게 돈을 벌수 있다’, ‘보험료를 냈으니 당연히 받아도 되는 돈’이란 생각으로 반복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경향도 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보험사기가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희박한 것이다.

보험사기로 적발이 된다고 해도 처벌이 미약해 보험사기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보험사기 적발 시 일반 ‘사기죄’로 처벌을 받는데, 형법상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보험사기 금액이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것과 살인미수, 존속살해 등 강력범죄화 되는 것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일반사기의 경우 징역형이 45.2%에 이르고 벌금형이 27% 수준인 것과 다르게 보험사기는 징역형을 받는 경우가 일반사기의 절반수준인 22.6%에 불과하다. 벌금형은 반대로 51.1%에 달한다. 안 걸리면 그만, 걸려도 높지 않은 벌금을 내는 수준이라 보험사기를 부풀리는 토양으로 작용하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때문에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하고 적발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10~20만원대의 경미사고를 통한 보험금 편취도 늘고 있는데, 이는 ‘남들 다 하는데’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작은 금액이다 보니 적발은 더 어렵지만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 심화된다. 총 보험금 지급이 늘면서 피해가 보험가입자 전체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보험은 사고발생률을 기반으로 보험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허위사고가 다량 발생할 경우 전체적인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보험산업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동시에 보험가입자 뿐 아니라 전체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보험사기 추정규모는 3조4000억원으로, 보험금 누수로 인해 가구당 20만원, 1인당 7만원의 보험료 인상을 야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는 보험료 인상으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보험제도의 존립기반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처벌규정 마련 등을 통한 적발만이 능사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보험범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사기예방’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험업계 전문가는 “미국 등의 경우 국가단위의 보험사기 적발 기구와 보험사, 수사기관 등이 긴밀히 협조하고 있으며, 보험사기에 따른 법적인 제재를 강력히 하고 있다”며 “보험사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보험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보험사기에 대한 범죄인식을 심어줘 보험사기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