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C악영향, 시스템도입, 수리적 산출 어려워…자율화 ‘유명무실’

중소형사 “협의요율 늘 것” 요율산출 역량 제고 도입취지 역행

<대한금융신문=김미리내 기자> 보험료 자율화 바람을 타고 기업성보험에 대해서도 요율자율화가 도입됐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화를 위해 도입한 ‘판단요율’ 사용 시 기존 통계요율(참조요율, 자사요율)과의 차액만큼을 준비금(부채)으로 쌓아야하기 때문이다.

개정 보험업법 감독규정이 시행되는 오는 4월부터 도입되는데 준비금 적립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나 산술적 계산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자율적으로 요율을 산출할 수 있도록 도입한 판단요율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즉 통계요율이 있는 영역은 침해하지 말라는 금융당국의 의도로 보고 있다.

이는 경쟁을 통해 보험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자체적인 요율산출 능력을 제고하라던 당국 취지와도 맞지 않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보험요율자율화에 따른 ‘구색 맞추기’ 시행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금융당국 “시장 혼란 우려한 최소한의 안정장치 마련”

최근 입법예고 된 보험업감독규정에 따르면 기업성보험 중 통계요율을 산출할 수 있는 구간에서 자율요율(판단, 협의요율) 사용 시 통계요율과의 차액을 미경과보험료적립금 평가액에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금융위 이동훈 보험과장은 “요율자율화로 인해 가격경쟁에 나선 보험사들이 덤핑 등 무리하게 가격을 낮출 경우 부실위험이 있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시스템이나 산술적 계산이 어려워 미경과보험료 적립금 차액을 평가해 추가 적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4월까지 시간도 빠듯한데다 선택의 자율성을 준다고 해 놓고 사실은 통계요율 구간은 침해하지 말라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감원 한 관계자는 “통계요율이 있는 구간에서 준비금까지 쌓게 했는데 판단요율을 사용하려는 회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더욱이 준비금을 쌓을 경우 부채로 작용하기 때문에 RBC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국취지 역행…협의요율 늘어날 것

오히려 기존에 참조요율이 있는 구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협의요율 사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중소사 한 관계자는 “협의요율은 절차가 간단하고 재보험 출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위험을 분산, 개별 위험도에 맞는 평가가 가능해 보험료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중소형사 가운데 판단요율을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곳은 없어 대부분은 협의요율 사용이 늘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판단요율 고위험 구간만 사용가능…안전장치는 없는 아이러니

제도 자체에 논리적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통계요율이 없는 곳에서 판단요율을 사용하라는 것인데, 이는 리스크가 큰 대형물건에 대해서만 판단요율을 사용하라는 얘기다.

인공위성, 로켓, 대형선박 등 사고위험이 큰 반면 사고가 잦지 않은 대형물건들의 경우 통계가 부족해 재보험사들이 전세계 통계와 위험률, 위험담보 가능성 등을 고려해 협의요율을 제공한다. 그러나 여기에 판단요율을 사용할 경우 재보험 출재가 어려워 보험사고 발생 시 위험분산이 되지 않고 자칫 파산의 위험까지 떠안을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이 큰 협의요율 구간은 비교할 수 있는 통계요율이 없으니 별도로 준비금을 쌓아야 할 필요가 없다. 결국 위험이 큰 곳에선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지만 그에 따른 안전장치가 없는 반면 위험이 적은 곳은 오히려 준비금을 쌓아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도입취지대로 자체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수준에서 시도해야 하는데, 위험이 큰 재보험 필요 구간에서만 판단요율을 사용토록 하고 있어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사용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누구를 위한 자율화 인가? 

참조요율 구간을 늘리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감독당국은 업계 전체 통계를 이용한 평균요율에 해당하는 참조요율 구간을 늘리고 있다. 통계부족 등으로 자사요율을 사용할 수 없는 구간이 많은 만큼 참조요율을 통해 장기적으로 자사요율을 사용토록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참조요율은 말 그래도 평균적인 요율일 뿐 ‘정답’은 아니다. 일례로 지난해 200억원 이하 재산종합보험에 대한 참조요율이 마련돼 기존 협의요율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보험사고가 없어 보험료가 저렴했던 가입자들은 사고로 보럼료가 높았던 계약자들과 평균요율을 적용하게 돼 오히려 보험료가 올라가는 불이익을 봤다. 참조요율 사용 시 오히려 개별적인 요율적용이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협의요율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참조요율 구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자사요율 구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소사 한 관계자는 “일반보험에 있어 대부분 협의요율에 의존한다는 당국의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역시 건수가 아닌 보험료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위험과 물건이 큰 협의요율 구간은 보험료가 커 당연히 비중이 높아 보일 수밖에 없다”며 “각사마다 입장도 생각도 모두 달라서 시장혼란이 예상되는데 이는 곧 소비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당국이 왜이리 서두르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준비금 적립과 관련한 규정은 2년의 일몰규정이 적용되며, 협의요율은 2년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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