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관점으론 풀 수 없는 문명사적 전환 시기
핀테크·사물인터넷 등 신환경 볼 수 있는 눈 필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낙하산에 대한 기록은 수천 년 전에도 있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기능적 형태의 낙하산은 1800년대에 들어서야 나타났다. 동양에서의 최초의 낙하산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흔히 중국의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요순시절 성군 중 한 사람인 순임금이 젊었을 때 우산을 이용해서 지붕에서 뛰어내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현대적 형태의 낙하산은 1802년 프랑스의 앙드레 가르느랭이 1000미터 높이의 기구에서 낙하한 것이라고 하며 비행기에서의 낙하산 낙하는 1912년에 이뤄졌다고 한다.

낙하산의 개발목적은 비행은 물론 높은 곳에서 신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런 낙하산이 유독 기업에선 부정적 인사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 회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벌어지고 있는 낙하산 인사의 폐해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는 원래의 조직과 무관한 이력을 가졌거나 다른 조직에서 일하던 사람이 리더의 일방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해당 조직에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자에 의해 정치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직무연관성 없이 공공기관의 임원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편이며, 금융권도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낙하산 인사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낙하산 인사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왜 최근에 들어서 유독 낙하산 인사의 부정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동서양을 불문하고 무소불위의 전제적 권력을 행사하던 권력자가 통치하던 시절에는 모든 인사가 권력자의 의도대로 이뤄졌기 때문에 낙하산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 이뤄진 인사가 빚은 참극은 손을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례를 역사책에 남기고 있다.

최근 KB국민은행장과 IBK기업은행장에 대한 낙하산 가능성을 두고 금융권은 각종 설에 휩싸여 있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올 12월), 이광구 우리은행장(내년 3월),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올 9월), 이덕훈 수출입은행장(내년 3월)이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밖에도 홍영만 자산관리공사 사장과 김한철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등도 임기가 다가오고 있어 금융권의 수장을 두고 각종 하마평이 자천타천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낙하산 가능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KB국민은행장의 경우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의 인사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고 IBK기업은행도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의 인사가 인구에 오르내리면서 금융권 노조는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부터 권력의 입김에 쉽게 빗장을 풀었던 금융권이지만,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경험했던 만큼 정권 말기에 집중적으로 펼쳐질 수도 있는 낙하산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노조의 입장에서 보면, 낙하산 인사는 조직 내부의 선순환 구조의 인사시스템을 망치는 근본 요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특히 직무연관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올 경우 조직의 충성도는 크게 떨어지게 돼 극한의 경쟁을 펼쳐야 하는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확실히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모든 곳에서 통용될 만큼 인사는 조직의 충성도와 생산성과 직결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직무연관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관점에서 세상을 평가하고 판단했던 사람들은 최근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핀테크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할 세계관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낙하산의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낙하산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특히 문명사적인 인식의 전환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