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핀테크 거품이 꺼졌다’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이다. 2016년은 지난 한 해 치솟았던 거품이 사리지고 실속을 차리는 한 해가 됐다. 정부와 금융회사, 핀테크 기업들은 홍보를 위한 핀테크가 아닌 인터넷은행, 로보어드바이저, P2P금융, 오픈플랫폼 등 실질적인 핀테크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3자간 협업을 도모했다. 본지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올 한해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핀테크 정책을 차례로 살펴보며 국내 핀테크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 세계 최초로 16개 은행과 25개 증권사가 참여하는 금융권 공동 오픈 플랫폼이 지난 8월 30일 개통됐다.
누구에게나 문 열린 핀테크 ‘낮은 울타리’
지난 4월 18일 핀테크 스타트업에게 희소식이 들려 왔다. 금융위원회가 소규모 전자금융업자의 등록자본금을 기존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함에 따라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3억원의 자본금으로 핀테크 회사를 차릴 수 있게 됐다.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지에 이어 온라인 금융거래 시 보안카드와 OTP(일회용 비밀번호) 사용 의무도 폐지돼 고객의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으며, 추심이체 출금동의도 다양화돼 모바일 결제플랫폼사의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전자문서만으로 손쉽게 스쿨뱅킹이나 보험료 등의 자동납부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7월 6일에는 제2차 인터넷전문은행 현장간담회를 통해 인터넷은행과 대부업권의 신용정보 및 신용정보망 공유 계획이 발표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은행이 중금리 대출을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플레이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한국신용정보원이 보유한 대부업권의 신용정보를 공유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인터넷은행의 전산시스템도 금융결제원과 한국은행의 지급결제망뿐만 아니라 신용정보원의 신용정보망에도 사전에 충분히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은행법 개정안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도 밝혔다. 임 위원장은 “혁신적인 IT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은행 출현을 위해서는 은행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는 20대 국회에서도 은행법 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주주의 사금고화 우려 등 일각에서 우려하는 부작용은 거래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등 제도보완을 통해 철저히 방지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8월 30일에는 세계 최초로 금융권 공동 핀테크 오픈플랫폼이 개통됐다. 지난해 7월부터 금융위와 금융결제원, 코스콤을 중심으로 16개 은행과 25개 증권사, 핀테크 기업 등이 참여해 구축을 추진한 결과 핀테크 기업이 금융회사와 연계된 오픈플랫폼을 통해 핀테크 서비스 개발 출시가 가능해졌다.

금융당국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된 금융권 공동 핀테크 오픈플랫폼을 핀테크 분야의 글로벌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초석으로 평가했지만, 의욕적인 정부와 달리 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금융기관마다 다른 시스템 운영 환경과 수수료에 대한 의견차가 모아지지 않아 2개월이 연기되며 개통된 오픈플랫폼은 지금도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로보, P2P…정부 지원책 수면 위로 오르며 ‘갈등’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정부 정책이 올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오르면서 업계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지원책이 오히려 규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4월 7일 금융위는 로보어드바이저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서비스 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금융당국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개인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해 자문서비스의 혁신과 대중화를 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산관리서비스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규제 체계 혁신을 위한 선도적인 시도로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Regulatory Sandbox)’를 운영하기로 발표했다.

7월 말부터 테스트베드를 운영해 로보어드바이저의 유효성과 안정성을 검증하고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발견된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할 것을 자신했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씨는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 유료화에서 시작됐다. 관련 업계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정부 지원사업에서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거나 새로 바뀔 때마다 비용을 지불하고 3개월마다 추가 비용을 들여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구조에 대해 불만을 토해냈다.

결국 8월 29일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의 기본 운영방안이 발표됐지만 업계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며 아우성쳤다.

테스트베드를 통과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다수의 계좌를 운용해야 하는데 수천만원의 비용이 부과되는 현실을 지적하자, 금융위는 테스트베드 참가업체가 자산배분 효율성과 서비스 접근성 등을 고려해 50만~1000만원 등 적정 가입규모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해명해 논란이 됐다.

P2P금융시장은 염원하던 대부업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얻어냈다.

지난 7월 12일 금융위는 P2P 대출에 대한 TF팀을 구성해 투자자 보호방안 등의 검토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유연한 울타리 내에서 업계의 자정적인 노력을 통해 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P2P 대출시장 가이드라인 TF팀을 구성했다.

가이드라인은 이달 시행을 목표로 P2P업체의 창의와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필수사항을 중심으로 마무리 작업 중이다.

금융위는 핀테크 산업 활성화 측면에서 P2P대출시장이 보다 건전하고 내실있게 성장해 나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P2P업체의 창의와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한 울타리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금융위는 정부기관과 금융회사, 핀테크기업들로 구성된 핀테크 육성 협의회 1차 회의를 지난 9월 22일 개최했다.
정부-금융-핀테크 ‘진정한 결실 만든 한 해로 기억되길’
정부와 금융기관, 핀테크 업계가 지난 1년 반 동안 핀테크 시장 활성화를 위해 손을 잡은 결과는 지난 9월 22일 제1차 ‘핀테크 육성 협의회’ 개최로 이어졌다.

핀테크 육성 협의회는 핀테크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정부 및 감독·지원기관, 업계, 전문가가 긴밀하게 협력·소통하기 위해 구성된 협의체다. 특히 핀테크 업계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P2P대출, 로보어드바이저, 크라우드펀딩, 블록체인 등 분야별 전문기업이 폭넓게 참여했다.

금융위는 이번 1차 회의를 기점으로 핀테크 육성 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제1단계 핀테크 지원방안의 성과를 기초로 제2단계 핀테크 발전전략을 모색할 방침이다.

9월 30일에는 요지부동인 은행법 개정안과는 별도로 케이뱅크가 금융위원회에 인터넷전문은행 본인가 신청서를 제출하며 속도를 냈다. 케이뱅크는 금년 중 영업개시를 목표로 은행 설립을 진행하고 금융당국은 혁신적인 IT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관련 입법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2016년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인 만큼 4대 구조개혁 과제의 하나인 금융개혁이 알찬 결실을 거둬야 할 때”라며 “특히 핀테크 산업을 금융의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는 데 매진하기 위해 핀테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올해를 두 달 남긴 시점에서 ‘많은 시도를 했다는 것에 만족하기보단 진정한 금융개혁을 이뤄냈다는 결과로 금융위원회가 기억되길 바란다’는 신년사는 정부뿐만 아닌 금융회사와 핀테크 기업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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