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위한 사각지대로 그 효과가 제한적인 국민연금제도가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편향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각지대 축소에 초점을 맞춰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 가구의 소득데이터가 제공된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소득구성 변화를 분석해보면 다른 어떤 소득원이나 정부 정책수단보다 국민연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미 국민연금 수급권을 확보한 사람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보다 사각지대를 줄이고 가입기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노후소득보장과 노인빈곤 완화수단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집중됐던 그동안의 연금개혁 논의방향은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곤층 74% 공적연금 통해 빈곤 벗어나

19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의 기간은 성장과 분배가 양립되던 기간과 분배가 악화된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고속성장 속에서 소득분배가 양호하게 유지되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경제환경이 급격히 변화되며 분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추세가 다시 변화하고 있다. 소득분배의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와 빈곤율 이 악화되다 개선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가처분소득(시장소득에 정부의 재분배수단인 조세·재정지출 효과가 더해진 최종소득 개념) 기준 분배지표와 시장소득기준 지표 간의 차이가 확대되고 가처분소득 기준 빈곤율과 지니계수가 줄어들고 있다. 시장에서 재분배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인 빈곤율과 지니계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재분배가 어떤 경로를 통해 빈곤율을 감소시키고 또 이 같은 현상은 얼마나 길게 지속될까. 시장소득 기준으로 가처분소득을 통해 빈곤을 벗어나는 가구와 빈곤에 머무르는 가구 사이에는 ‘공적연금소득’ 수급에 있다. 실제 재분배를 통해 빈곤을 벗어난 가구 상당수(74.3%)가 공적연금을 수급하고 있었으며, 가구주 연령이 65세 이상인 가구의 경우 해당 수치가 각각 80.6%까지 올라갔다.

재분배를 통해 빈곤을 탈출한 가구의 소득 변화도 지난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기여도가 68%를 차지해 2006년 60%에서 8%포인트 증가했다<표 1 참조>. 2008년에 도입된 기초노령연금 및 기초연금까지 포함하면 2006년 60%에서 2015년 76%로 16%포인트나 증가한 셈이다.

국가 간 수치를 비교해보아도 공적연금의 재분배 기여도는 지배적이다. 네덜란드의 공적연금 재분배 영향력은 73.7%, 이탈리아는 80.3%로 나타났으며 공적연금이 성숙한 국가에서 재분배의 압도적인 부분을 공적연금이 담당하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연금 탄탄할수록 노동의욕 상실 ‘양날의 칼’

공적연금은 재분배를 통해 소득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공적연금이 가진 ‘양날의 칼’에 유의해야 한다.

공적연금은 제도가 탄탄할수록 근로의욕을 낮춰 오히려 시장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로가 될 수 있다. OECD 국가들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과 근로소득이 0인 가구 비중의 관계를 추출해 보면 양의 관계를 보이며, 특히 우리나라에 비해 다른 나라는 근로소득이 0인 가구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표2 참조>.

우리나라의 경우 재분배가 소득불평등을 감소시킨 정도가 작아 재분배 기능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인 소득불평등도가 OECD 국가의 중간 정도를 보이는 것은 애초의 시장소득불평등이 높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근로소득이 0인 가구의 비중이 낮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윤 교수는 “고령화로 인해 건강하고 근로능력이 높은 고령자가 많아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연금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단 공적연금이 아직 미성숙한 우리나라는 근로능력이 충분한 고령자가 근로를 통해 노후소득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소득대체율만 높이는 연금개혁은 반쪽 짜리

노후소득보장에 관한 그간의 논의는 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집중돼 왔다. 최근에는 국민연금보다 월등히 높은 급여액 때문에 비판받아 온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실무합의안이 발표됐지만 최종 합의에서 제외되는 논란도 있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소득대체율에 편중되는 현상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기본적으로 낮게 설계되어 있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이 노인빈곤을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며,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은 전체 경제에도 별다른 부작용을 갖지 않는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검토해 보면 이 같은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소득대체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 현재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총 표준소득대체율은 50% 정도인데 이는 OECD 국가의 공적연금 평균소득 대체율(41.3%)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또한 선진국과 달리 이러한 외형상의 대체율이 실제 연금수령액을 나타내는 실질대체율로 이어지지 않는다. 2014년 12월 기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평균지급액을 합산한 표준수급자(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중복수급자)의 총 실질대체율은 25.6%에 불과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실제 가입기간이 짧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평균가입 기간이 약 16년, EU 27개국은 36년으로 노동시장에서 근로기간이 긴데도 연금가입 기간이 짧은 것은 국민연금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연금 사각지대가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이 순기능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이 충분치 못할 경우 연금재정의 건전성을 훼손하게 되고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국가재정, 자본시장, 노동시장, 장기적인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공적연금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면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튼튼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명목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데만 주력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공적연금 강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크게 낮지 않은 현재의 명목소득대체율을 실질소득대체율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

윤 교수는 “외형적으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명목적인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이 아닌 노후소득보장의 실질적인 병목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취약층의 연금보험료를 지원하고 건강한 고령자가 근로를 계속하는데 장애가 되는 노동시장 차별을 해소해 고용지원서비스가 고령자를 적극적으로 포괄하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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