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위 과반수 이상 여당 우호…법안 통과 ‘촉각’
영세 GA 줄도산·통폐합 예상…“현실성 없는 정책”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보험설계사가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범주에 포함될 경우 보험사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매해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보험업계에서 전속설계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삼성생명·화재가 부담해야 할 국민연금만 1000억원에 가깝다.

보험대리점(GA)에 소속된 설계사도 보험사의 전속설계사 규모와 비슷해 보험업계 전체가 국민연금에 부담해야할 비용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관련 법안 통과에 따라 실적이 낮은 저능률 설계사에 대한 구조조정, 영세 GA의 줄도산 및 통폐합 등도 예상되면서 업계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정책 방향이란 비판도 나온다.

◇ 복지부, 설계사 등 국민연금 가입 추진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보험설계사, 캐디, 퀵서비스 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수근로자)를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범주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입법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우선추진과제로 보고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3월 조경태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뒤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 위탁돼 있다.

보험업계는 특수근로자에 보험설계사가 포함된 만큼 법안 통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당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보험사와 GA는 연금보험료(9%)의 절반을 대신 납부해야한다.

현행법상 보험설계사는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국민연금 가입 시 지역가입자로 연금보험료를 전액 부담한다.

문재인 정부는 특수근로자 기본권 보장에 대한 추진 의지가 매우 높다. 보건복지위 상임위원 중 여당이나 우호적 정당 소속 의원이 과반수 이상(더불어민주당 9명, 국민의당 3명, 바른정당 1명, 정의당 1명)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법안 통과에 힘을 싣는다.

◇연금 보험료만 3000억 추산

앞으로 보험사들이 국민연금에 지급해야 할 연금 보험료는 2가지 방법으로 추산이 가능하다.

먼저 보험사들이 전속설계사에 지급한 총 수수료를 기준으로 보험사의 부담액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영업하는 23개 생명보험사와 14개 손해보험사가 전속설계사에게 지급한 총 수수료는 6조9234억원이다.

즉 지난해 보험사들은 전속설계사에게 약 7조원의 소득을 안겨준 것이다. 업권별로는 생명보험사가 4조2164억원, 손해보험사가 2조707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보험사가 부담해야할 연금 보험료(4.5%)를 적용하면 보험사들은 국민연금에 매해 3000억원 가량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권별로 설계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를 대입해보면 연간 1000억원 가까이 비용이 발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방식은 특수근로자의 산재보험료 산정의 기초가 되는 ‘설계사 보수액’을 대입하는 것이다. 전속설계사의 월 소득이 일정치 않고 소득분포도 개별차가 크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생명보험설계사와 손해보험설계사의 월 보수액은 262만3000원, 218만3000원으로 연간 소득은 각각 3147만6000원, 2619만6000원이다.

이를 전체 전속설계사 수에 대입해 보험사가 부담해야 할 연금 보험료를 산출하면 약 2600억원으로 총 수수료를 기준으로 추산한 연금 보험료보다 13%(400억원) 정도 낮다.

현재 일부 보험사들은 내부적으로 향후 발생할 연금 보험료 액수를 산출하고 있다. 각사별 연금 보험료 추산 규모는 총 수수료 기준과 설계사 보수액 기준의 중간 정도로 파악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고소득 근로자에 적용되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액’이 월 434만원이란 점에서 당장은 정확한 연금 보험료 산출이 어려울 수 있다”며 “다만 내부적으로 산출해본 연금 보험료도 총 수수료 기준 연금 보험료와 10~20% 정도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비용부담에 설계사 ‘구조조정’ 가시화될까

보험업계는 매해 수천억원의 국민연금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경우 설계사를 중심으로 한 판매채널의 대규모 정리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형 보험사의 경우라도 전속설계사의 가동률은 80%를 조금 웃돈다. 즉 10중 8명은 실적이 있고 나머지는 이름만 올려놓을 뿐 영업실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보험협회에 의하면 월 100만원 이하의 소득을 벌고 있는 전속설계사 비중이 생명보험 27.9%, 손해보험 32.7%로 10명 중 3명꼴이다.

보험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영업실적이 없거나 일정 소득 이하의 설계사를 대상으로 타이트한 생산성 관리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일정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설계사에 대한 구조조정도 포함된다.

GA에 소속된 보험설계사의 경우 상황은 더 좋지 못하다. 현재 GA 소속 설계사는 총 21만4523명으로 전체 설계사의 절반 이상(52%)을 차지한다.

즉 GA들도 보험사 수준의 연금 보험료를 납부해야하는 것인데 이를 두고 GA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GA의 설계사 가동률은 평균 60%대에 그치는 데가 고소득 설계사와 저능률 설계사의 소득 편차도 전속설계사보다 훨씬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사 3000명 이상의 대형 GA라 해도 자산 규모를 놓고 보면 보험사에 비해 매우 영세한 수준이다.

한 대형 GA 대표는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줄도산에 이르는 GA도 많을 것이다. 업계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정책”이라며 “만약 설계사가 국민연금 가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정작 가입 니즈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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