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변화속도 따라잡기 위한 첨단기술 확보에 급급
유럽은행 내년부터 PSD2 규제로 제3자가 데이터 활용 가능

국내 은행들은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 호조로 사상 최대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은산분리’라는 보호막 같은 규제가 사라지는 순간 글로벌 IT플랫폼 기업과 경쟁에서 언제 제2의 코닥이 될지 모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 은행들이 2~3년전부터 모바일 뱅킹을 중심으로 디지털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지만 디지털 전환 전략이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세계 은행과 정책당국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은 은행업의 본질을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중심 사업모델로 혁신하는데 디지털 전환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주목할 움직임이 ‘오픈뱅킹’이다. 오픈뱅킹은 외부 개발자가 쉽게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은행이 API를 열어주고 그들과 협력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유럽연합은 내년부터 고객이 지정한 제3자 업체가 은행이 보유한 고객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PSD2(Payment Service Directive 2)’ 규제를 시작할 예정이다. PSD2는 은행의 오픈API를 통해 결제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금융회사의 독점에서 벗어나 핀테크 업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일본도 지난 5월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은행이 자발적으로 오픈API 구축에 나서도록 의무화했으며정부 정책과 별개로 여러 글로벌 은행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자체적으로 오픈 API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세계 최초 ‘금융권 공동 오픈플랫폼’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지만 은행들은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여전히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제공하는 API의 범위 또한 단순조회 위주로 한정돼 있다.

게다가 핀테크 기업이 지불하기엔 부담스러운 서비스 이용료로 금융권 공동 오픈플랫폼 활용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은행들의 디지털 전환 전략이 플랫폼 중심의 사업모델 구축과 같은 총체적인 시스템이 아닌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같은 단편적인 기술 확보에 치중된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첨단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력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단편적인 기술 확보로는 가치창출을 위한 개인정보 활용에 한계가 있다.  

하나금융연구소 류창원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업권 간 경계가 사라지는 노라인(No line) 경쟁이자 플랫폼 경쟁”이라며 “은행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기존의 폐쇄적인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방형 혁신은 전세계에서 추진중인 오픈API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기존 고객기반을 활용해 플랫폼을 구축하고 창의적인 핀테크 사업자와 협력해 참신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고객 접점을 잃지 않고도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류 연구원은 “국내에는 우수한 IT기술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망, 글로벌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소비자가 존재한다”며 “국내 은행들이 이런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과감히 디지털 전환에 나선다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렌드는 더 이상 생존의 위협이 아닌 경쟁력 제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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