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금융권 오픈AP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금융권 오픈API, 오픈뱅킹사업의 핵심은 금융정보의 상품화다. 금융회사들은 그들이 보유한 빅데이터를 핀테크, 유통, 통신, 제조업체 등 제3자에게 제공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무한한 양의 빅데이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금융회사가 정보제공을 통해 창출하게 될 수익 규모는 가늠할 수 없다.

◆오픈뱅킹 통해 API 사업화 검토하는 금융권

유럽연합은 내년 1월부터 EU-PSD2(지급결제서비스지침)를 시행할 방침이다. PSD2는 은행이 보유한 금융데이터를 고객이 승인할 경우 제3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EU는 PSD2를 통해 금융정보에 대한 권리가 은행이 아닌 고객에게 있다고 판단하고 금융기관이 계좌정보를 독점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유럽연합은 내년 1월부터 은행이 보유한 금융데이터를 고객이 승인할 경우 제3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EU-PSD2(지급결제서비스지침)를 시행한다. 

국내 금융권도 작년에 출시된 금융권 공동 오픈플랫폼을 시작으로 개별 시중은행들이 오픈플랫폼 구축을 검토∙준비중이다. 금융정보 공유에 보수적이었던 국내은행들이 오픈API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 금융업의 본질을 ‘돈’이 아닌 ‘데이터’에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 시중은행 중 오픈API 시장에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농협은행은 P2P금융 오픈플랫폼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가상화폐 오픈API 구축을 완료했다.

P2P금융과 가상화폐 오픈API는 간단히 말해 P2P대출기업과 가상화폐 거래소에 열리는 농협은행의 네트워크다. P2P대출기업과 가상화폐 거래소는 농협은행이 제공하는 다양한 API를 통해 자사의 앱이나 웹에서 은행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

P2P대출기업과 가상화폐 거래소는 거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의무적으로 제3자인 은행에 고객의 예치금을 보관하고 은행을 통해 실명확인을 마친 고객의 계좌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행과 거래계약이 돼 있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최근 가상통화 거래업을 금융업이 아닌 유사수신업으로 분류하고 규제를 강화하며 가상통화 거래소들은 오는 12월까지 당국에서 제시한 시스템 및 인프라를 모두 갖춰야 사업이 가능해진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은 비용부담과 인력부족으로 단기간 내에 시스템 구축이 힘든 거래소를 대상으로 자사의 가상화폐 API를 열어주고 거래소에는 API 사용수수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수수료 비용은 제공되는 정보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책정될 예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기존 금융정보들은 사실상 공인인증서를 통한 스크래핑 방식을 통해 일반 기업들이 무료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앞으로 공공성을 위한 정보는 무료로 개방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들은 미래 오픈API시대에 각각의 데이터마다 가격이 매겨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은행들은 더 이상 API를 독점하는 것은 경쟁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이 가진 API가 미래의 수익사업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금융IT업계 전문가들은 그동안 금융상품만을 수익원으로 했던 은행이 네트워크를 개방하며 자사의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라이선스까지 상품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 ’오픈API’

미국의 핀테크 업체 '요들리(yodlee)'는 오픈API 기반 금융사 간 데이터 규격화 및 데이터 중개사업을 추진해 연간 2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해 오픈 API 기반 비즈니스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 성장에 한계를 느끼며 전통 산업에 ICT기술을 활용해 차세대 경쟁력을 확보하는 현상을 말한다.

금융시장 또한 최근 몇 년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가장 우선순위로 고민해야 할 주요전략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디지털 전환 전략을 완성시키는 핵심 플랫폼으로 ‘오픈 API’를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기업들은 초창기 자체 개발한 핵심기술을 꽁꽁 감추고 기업 내부에서만 공유하며 그 기술을 기업의 아이덴티티로 내세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태계 내에 자사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공유하고 제 3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기업에서 개발한 핵심기술을 타 기업이나 개인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생태계 리딩을 꾀하는 전략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통신 네트워크를 독점해왔던 통신사업자들이 오픈API를 통해 B2B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최근 행보는 금융회사의 오픈 API 전략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통신사 고유 서비스로 제공하는 네트워크 시장은 이미 한계에 접어들었다. 무선 서비스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2020년쯤에는 더 이상 수요가 확대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IT서비스 시장 및 SW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은 지난해부터 SDN(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 NFV(네트워크 기능 가상화), 클라우드, 모바일 등 가상화 기술을 도입해 물리적인 서비스에서 가상화 서비스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서비스 설계 및 운영, 관리에 대한 비즈니스를 선점하고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보안·관리,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할 가상공간에 어떤 사업자가 생태계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지위가 결정될 것”이라며 “B2B 콘텐츠 마켓의 경쟁력은 결국 오픈API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사업자는 API 환경의 생태계 구축에 실패 경험이 가장 많은 사업자 중 하나였다. 참여하는 개발자 중심이 아닌 통신사 중심으로 시장을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

전세계는 오픈API 생태계 속에서 공급업체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협업해 콘텐츠를 만들고 소통하는 ‘데브옵스형'  B2B시장을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통 및 협업환경의 성공적인 구축을 통해 B2B 고객의 수요를 끌어들이고, 다양한 개발자들이 개발하는 콘텐츠는 다시 개별 기업에 맞춤화된 형태로 서비스되는 생태계가 구축되길 기대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트렌드 속에서  ‘요들리(Yodlee)’와 같은 다양한 오픈 API 기반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수익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핀테크 업체 요들리는 오픈API 기반 금융사 간 데이터 규격화 및 데이터 중개사업을 추진해 연간 2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의 오픈API 기반 비즈니스는 의사결정의 지연 및 개방형 트렌드에 대한 미온적 대응 등으로 대표적인 선도사업자가 없는 상황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해외의 오픈API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많은 사업자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추진 사업자를 타겟으로 한 B2B 비즈니스를 지목하고 있다”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확산으로 향후 오픈API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시장 태동기인 국내 시장은 높은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유명무실해진 한국의 금융공동 오픈플랫폼

우리나라는 지난해 은행공동 오픈플랫폼 개통 이후 서비스를 접수한 기업은 70여 곳에 이르지만 은행이 제공한 API를 활용해 상용화된 결과물은 소수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거래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EU가 PSD2를 통해 오픈 API시대에 한발 다가섰다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금융결제원과 16개 은행이 함께 만든 은행권 공동 오픈플랫폼을 꼽을 수 있다.

계좌 입·출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핀테크기업이 자사앱에 적용해 서비스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표준화된 API형태의 플랫폼으로 핀테크기업이 해당 오픈플랫폼에 접속하면 16개 은행과 연결된다.

오픈플랫폼 개통 이후 서비스를 접수한 기업은 70여 곳에 이르지만 은행이 제공한 API를 활용해 상용화된 결과물은 소수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거래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은행공동 오픈플랫폼은 국내 16개 시중은행이 참여했지만 시장에 제공된 API는 출금, 입금 이체, 잔액 및 거래 내역 조회, 계좌 실명 조회 등 5개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오픈 API 프로젝트를 통해 핀테크 기업들의 기술개발 및 서비스 구현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독려했지만, 은행에서 공급하는 API가 워낙 적고 이마저도 핀테크 기업이 지불하기엔 부담스런 API 이용수수료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채 1년이 지나갔다.

현재 핀테크 기업은 은행 API 사용료로 일반기업의 펌뱅킹 이용료와 같은 출금·입금 건당 400~500원의 수수료를 내야한다. 고객이 한번 조회할 때마다 비용이 나가는 구조로 1명의 고객이 하루에도 몇번씩 조회를 한다고 가정하면 많게는 한 달에 수백억 수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하나금융연구소 류창원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업권 간 경계가 사라지는 노라인(No line) 경쟁이자 플랫폼 경쟁”이라며 “은행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기존의 폐쇄적인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방형 혁신은 전세계에서 추진중인 오픈API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기존 고객기반을 활용해 플랫폼을 구축하고 창의적인 핀테크 사업자와 협력해 참신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고객 접점을 잃지 않고도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류 연구원은 “국내에는 우수한 IT기술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망, 글로벌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소비자가 존재한다”며 “국내 은행들이 이런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과감히 디지털 전환에 나선다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렌드는 더 이상 생존의 위협이 아닌 경쟁력 제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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