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방위적 규제완화로 투자환경 조성 전제 요구  

 ‘원칙중심’ 규제로 자본시장법 패러다임 전환돼야
 사모시장 확대, IPO제약 해소 등 시장조성 우선과제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장 핵심기조인 ‘혁신성장’은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낙수효과 기대에서 벗어나 중소·벤처기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부동산 등에 집중된 시장의 유동자금을 혁신기업에 끌어오고 이러한 기업들을 성장시켜 산업과 경제전반 발전의 선순환 고리로 만드는 게 골자다.

그러나 현재 기업의 자금조달은 창업초기 기업이나 IPO(기업공개)를 앞둔 후기기업에 집중돼 있다. 중간 성장단계의 기업들은 투자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자금조달을 하지 못해 ‘데스밸리(창업 후 3~7년 내 겪는 도산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싼값에 대기업에 흡수되거나 도산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들 성장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이 정책 성공의 중요한 과제며,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바로 자본시장이다. 성장성 있는 기업을 골라내고 직·간접적으로 자금을 공급해 시장을 형성하는 시장조성자이자 공급자로서 금융투자업계의 역할이 부상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이 같은 실현을 위해서는 ‘모험’ 자본의 공급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이미 시장에는 다양한 가능성과 방안들이 나와 있고, 과거에도 이미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자본 공급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자금공급보다 ‘책임’을 강조하다 보니 제도에 손발이 묶여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험자본 공급자로서 자본시장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금투업권에 풀어져야 할 규제들을 짚어봤다. 

1. 관치 내려놔야…규제 패러다임 전환 필요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자본 공급 실현을 위해서는 다방면의 규제완화와 제도개선이 필요하지만 이를 손쉽게 바꿀 수 있는 대전제로 꼽히는 것이 바로 ‘원칙중심’ 규제로의 전환이다. 

법률에 일반적인 원칙만을 기술하고 원칙준수를 위한 방법과 과정 등을 증권사의 자율규제 및 내부통제 등에 맡기되, 엄중한 사후 결과 책임을 부과하는 규제체계다.

현 자본시장법이 규제목적 달성을 위해 가야할 길을 하나로 정해놨다면, 원칙중심은 회사별로 다양한 방법으로 길을 찾고 규제목적에만 도달하면 된다. 

 

현재의 규정중심 법체계는 금융상품의 생산, 판매 등에 대해 지켜야 할 규정을 일일이 나열해 새로운 구조의 상품을 개발하거나 로보어드바이저 등 혁신적 금융기법을 도입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원칙중심은 과정의 다양성이 존중됨에 따라 과정 사이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시도들이 가능하다. 단순히 개별 건의 규제 완화만으로는 현재의 빠른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때문에 현재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학계, 정치권에서도 원칙중심규제 도입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상태다.  

금융투자협회 김진억 법무지원부장은 “현행 법체계에서 새로운 상품개발이나 혁신적 금융기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입법절차가 필요해 금융혁신을 견인하지 못하는 데다, 규제의 후행성으로 규제공백이나 투자자보호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며 “덧붙여지는 규제들로 규정이 복잡해져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원칙중심 규제 도입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금융당국이 시장에 헤게모니를 내려놔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도입이란 사실상 ‘관치’를 내려놔야 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이는 주도권이나 권위싸움이 아니다. 시장에 대한 당국의 ‘신뢰’의 문제다. 때문에 무엇보다 당국의 개선의지가 중요하다. 워낙 방대한 작업인데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개정작업 역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규제에 익숙해 있던 당국과 금융사 모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한 만큼 신중한 접근과 많은 논의가 필요한 작업”이라면서도 “현재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 자본시장 내에서 규제의 틀이 변할 경우 보다 손쉽게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며, 자본시장의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을 위해서도 규제 자체에 대한 인식전환과 빠른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 사모시장 활성화를 통한 모험자본 공급 

규제 패러다임 전환이 장기적 입장에서 봐야한다면,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바로 사모시장 규제다. 

업계에서는 수익잠재력과 위험을 동시에 보유한 모험자본의 특성상 사모시장 확대를 통한 투자 활성화가 무엇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실질적으로 모험자본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전문투자자가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조성도 요구된다.

 

우선 IPO 이전 단계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이끌 사모시장이 형성될 경우 현재의 데스밸리를 넘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정부 당시 ‘잡스법’이라 불리는 스타트업 육성 정책에 따라 신성장기업들이 대거 성장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사모시장의 확대다. 

미국은 공·사모 판단기준을 실제 청약자수로 두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권유자수(49인)로 한정하고 있어 산정 기준이 모호하고, 권유자가 다 찼는데 실제 청약은 들어오지 않아 투자가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를 실제 청약자수로 변경할 경우 공개적인 광고와 투자권유가 가능해져 시장이 훨씬 커질 수 있다. 

또한 사모시장이 형성돼 기업에 계속적인 자금공급이 이뤄질 경우 그동안 레코드 부족으로 형성되지 못했던 사모시장이 확대되고,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올려주는 테크뱅커들의 등장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소 성장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새로운 시장들이 생겨나 선순환적인 구조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은행대출, 정책자금 지원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기업자금 공급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시장형성 시 자금조달을 위해 투자자를 확대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전문성 있는 개인투자자를 시장참여자에 포함해 시장의 잠자고 있는 유동자금을 기업으로 끌어오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은 위험투자를 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만큼 사모시장을 통한 모험자금 공급은 글로벌 트렌드”라며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신속하고 저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사모시장이야말로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 IPO를 통한 연속성 있는 투자시장 조성

증권사가 5% 이상 지분을 투자한 비상장기업의 단독 상장주관업무 수행을 위한 제도개선도 요구된다. 이는 상장 시 주관사가 IPO에 불리한 정보를 숨겨 가격형성에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마련된 제도다. 그러나 오히려 기업들이 주관사 쇼핑에 나서면서 주관사가 주도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수수료 마케팅에 몰두해 IPO시장이 크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해외의 경우 IPO단계에서 증권사의 경영참여형 자기자본 투자가 많이 이뤄지는데, 지분이 10%를 넘어가도 공동주관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다만 사후평가에서 제재를 강하게 하고 이 경우 파산에 이를 수 있어 사실상 이러한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IPO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 규제와도 맞지 않고,  관계인수인 수요예측도 불허, IPO를 열심히 해 기업을 상장시켜도 이를 계열사 펀드에는 받아가지 못하게 하는 등 연결된 사업구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모험자본 투자 후 IPO주관 업무 수행 제약을 해소해 기업활동 지원을 위한 업무연속성을 강화하고 관계인수인이 인수하는 증권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운용제한도 해소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수수수료 출혈경쟁의 주요인이 되는 리그테이블 기준개선도 시장 정상화를 위한 방안으로 요구된다. 
 

 

4. 초기투자 활성화 위한 컨버터블노트와 SAFE 도입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반화된 컨버터블노트와 SAFE는 초기성장기업 투자에 가장 큰 걸림돌인 기업가치 평가의 어려움을 완화시켜주는 투자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치평가를 미래로 유보해 계약시점에 전환가격을 정하지 않고 벤처캐피탈의 공식적인 투자를 받는 단계까지 가치평가를 지연시켜 차후 전환가격을 정하는 것으로 초기 투자를 활성화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5. 기업전문가 ‘테크뱅커’ 육성 

성장 초기기업들의 투자가 어려운 이유는 정보의 부족에 따른 신뢰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이 바로 테크뱅커다. 특정산업, 기술에 대한 전문성, 재무적 지식, 네트워크를 보유한 전문가 집단으로 단순 자금조달뿐 아니라 금융외적 회사가치 상승을 위한 다양한 작업들을 수행하게 된다.

국내는 현재 차이니즈월 규제로 기업활동 전반에 대한 컨설턴트 활동이 어렵지만 준법감시인 등을 통해 사후감독을 받도록 조치하고 일정조건을 갖춘 산업전문가를 차이니즈월에서 자유로운 직능으로 분류해 운영할 경우 기업의 가치 창출 및 성장을 더욱 가속화 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에도 국내 모험자본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산적해 있다. 결국 실현 가능성은 금융당국이 시장을 믿고 규제를 완화해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투자는 타이밍이다. 전세계 금융시장과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혁신성장’이 공수표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시장이 형성되는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된다. 당국이 먼저 시장을 믿어야 ‘혁신’도 ‘성장’도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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