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종 품종으로 빚은 술 ‘맛과 향’ 남달라, 토종 가능성 확인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2012년 이후 60종 우리 볍씨 찾아내

▲ 2012년부터 토종 볍씨를 찾아나서 현재까지 60여 품종을 되살려낸 우보 농장의 이근이 대표. 사진은 11일 대학로 ‘마르쉐@’에서 이 대표가 토종볍씨를 판매하는 모습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먹는 쌀 품종 셋을 들라하면 ‘삼광’과 ‘추청’, 그리고 ‘고시히카리’라고 한다. 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삼광’은 주로 충청도에서 많이 짓는 벼다. ‘추청’은 이름이 낯설 뿐, 이미 오래전부터 맛있는 쌀로 알려져 있는 ‘아키바리’를 말한다. 그리고 고시히카리는 1950년대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보니, 우리가 많이 먹는 쌀 세 품종 중 두 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름은 어떠한가. 자치나, 백석, 자광도, 녹두도, 조동지, 보리벼, 괴산찰, 올벼, 흑갱, 궐나도, 북흑조, 졸방벼, 화도, 대관도, 버들벼. 모두 낯설다.

벼라는 말이 들어있어 쌀을 의미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도시 사람들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일 것이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 중 ‘올벼’라는 이름을 아는 이들이 좀 있겠지만, 이것도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올벼는 조생종 벼를 말하기도 하지만, 함경남도 지역에서 주로 경작되던 조생종 벼 품종이란다. 즉 위에 열거한 10여개의 단어는 우리 토종 쌀들이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식생하는 벼를 조사한 자료(1914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자료)에 따르면 100여년 전, 전국적으로 1451개의 품종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쌀은 지금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앞서 말한 일본 품종과 국내 연구소에서 개발된 몇 개의 품종만이 전국의 논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토종벼 16종으로 빚은 막걸리 시음회가 지난 11일 대학로에서 열렸다. 도시농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월 한차례씩 대학로와 성수동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쉐@’에서 우리 토종쌀로 빚은 막걸리 시음회를 가진 것이다. 토종쌀 되살리기에 나선지 6년만의 일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토종쌀을 찾아, 현재까지 약 60여종의 벼를 되살린 이는 고양시에서 우보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근이 대표이다. 토종 운동가라 불릴 정도로 토종벼에 천작하고 있는 이 대표는 고양시에서 전업 농부가 되기 전까지 잡지사와 출판사 기자, 대표 등의 일을 해왔다. 그와 함께 2012년부터 토종쌀 찾기에 같이 나섰던 음식문화 전문기자인 김수향(45, 카페 수카라 대표)씨의 기획 속에 이번 토종쌀 막걸리 시음회가 개최된 것. 

처음 이 대표의 토종쌀을 밥으로 접하면서 토종을 좋아하게 됐다는 김 대표는 이 쌀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막걸리 시음회’를 계획했다고 한다.

이번 시음회에 나온 16종의 토종쌀은 같은 누룩을 사용해 대략 한 달 안팎의 시간동안 발효 숙성된 단양주였는데 이름과 모양새가 다르듯, 맛과 향도 모두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을 만큼 다채로웠다. 주당들이 좋아할 만한 알코올감을 지닌 술부터, 궁궐에서 각종 연회에 사용했던 향온주의 맛까지 기대 이상의 맛과 향을 보여준 것이다.

▲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와 홍대에서 카페 ‘수카라’를 운영하고 있는 김수향 대표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된 16종 토종쌀로 빚어진 막걸리 시음회.

특히 시음회에서 눈길이 간 막걸리들은 대체로 ‘멥쌀’로 빚은 술들이었다. 강원도에서 주로 재배되던 만생종 벼인 ‘녹두도’는 앞서 말했던 향온주의 맛을 지닌 데다, 적당한 알코올감, 그리고 단맛과 신맛이 잘 균형 잡혀 있는 술이었다. 이밖에도 전라도 지역의 만생종 멥쌀인 ‘졸장벼’와 경상도 지역의 만생종 벼인 ‘대관도’, 붉은 빛을 띤 경기도 지역의 만생종 벼 ‘자광도’ 등이 시음회 참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 행사를 기획한 김수향 대표는 “토종으로 술을 빚은 그 자체가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토종의 의미와 토종쌀이 지닌 가능성을 이번 행사를 통해 확인하게 됐다”고 행사를 자평했다. 물론 부활의 과정 속에 있지만 미약한 존재감으로 남아 있는 토종이기에 김 대표는 “농부들이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토종쌀의 현재화(현재의 문화 속에 정착하는 일)와 생활화(우리 생활 속에 정착하는 일)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마르쉐@’에서 더 많은 토종 막걸리를 마실 수 있길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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