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험료 할증 없애자 경상 보험금 급증
150억 깎아주고 3천억 손실…제도개선 풍선효과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가벼운 접촉사고에도 소위 ‘뒷목부터 잡는’ 경상사고 부상자가 급증해 보험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지난해 타박상, 목·허리 염좌 등 경상부상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규모가 크게 늘었다. 2년 전 자동차사고 저과실자(피해자)에 대한 보험료 할증을 없앤 제도 변경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피해자에 대한 페널티를 없애자 경미한 부상에도 보험금을 청구하는 ‘풍선효과’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3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현대·DB·KB 등 11개 손해보험사들이 자동차사고 부상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은 3조5572억원이다. 이 가운데 경상사고자(부상급수 12~14급)에 지급한 보험금은 2조2935억원으로 전체의 64.5%를 차지한다. 

보험사는 자동차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고, 대인배상Ⅰ·Ⅱ 담보에서 사망이나 부상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한다. 이때 부상보험금은 1~14급의 부상등급에 따라 등급별 한도액(50만~3000만원) 내에서 실제 손해액을 준다.

경상사고 부상자는 50만~120만원의 비교적 적은 금액을 보상받는다. 통상 경미한 후미추돌 등으로 단순 타박상을 입거나 목·허리·팔·다리 염좌(인대가 늘어나거나 찢어지는 현상), 5치 이하의 치아보철치료 등이 해당한다. 이보다 심한 골절이나 뇌진탕 등도 11급이라 부상급수 12~14급은 사고만 나도 보험금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문제는 경상사고 부상자에게 지급한 보험금만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최근 3년간 경상사고 부상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살펴보면 2016년 1조9303억원에서 2017년 2조333억원으로 1030억원 늘더니, 2017년에서 2018년엔 두 배가 넘는 2602억원 급증했다.

부상급수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1~3급 부상자에 지급한 보험금 규모는 5239억원으로 전년대비 544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4~11급도 7399억원으로 229억원 줄었다. 심각한 부상일수록 보험금 지급이 줄어드는 반면 경상사고자만 크게 늘어난 거다.

이러한 추이는 부상자 수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자동차보험에 접수된 사고 부상자는 총 164만명으로 전년(160만명)대비 4만명, 2년 전보다는 1만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그러나 같은 기간 경상사고 부상자는 151만명에서 155만명으로 약 4만명 가량 급증했다. 2016년에서 2017년엔 154만명에서 151만명으로 감소했단 점을 미뤄볼 때 지난해 경상사고자의 신규 유입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손보업계는 지난해 경상사고자가 갑자기 늘어난 가장 큰 이유로 자동차보험 할인·할증제도 변경을 꼽는다. 금융감독원은 2017년 9월 과실비율 50% 미만의 저과실자에게 보험료 할증을 제한하는 내용의 ‘과실비율에 따른 보험료 할증 차등화’를 시행했다.

자동차보험은 개인별 사고 건수(빈도)와 피해액(심도)을 감안해 보험료를 올리거나 내린다. 제도변경 이전에는 과실비율 50% 미만의 자동차사고 피해자에게도 50% 이상 가해자와 동일하게 보험료가 할증됐다.

그러나 2017년 9월부터는 피해자에겐 사고 1건에 대한 보험료는 올리지 않는 대신, 3년간 보험료 인하만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사고가 나도 피해자라면 치료가 필요 없는 부상에 보험금을 청구할 유인이 생기게 된 거다.

당시 금감원은 피해자에게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경우 약 151억원(2016년 기준)의 보험료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도 변경에도 보험료를 올리지 않아서다. 덕분에 보험사들은 지난해에만 3000억원 가까운 보험금을 더 지급하게 됐다. 당국의 가격 억제가 자동차보험 적자를 심화시켜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손보사 자동차보험 관계자는 “전체 사고자 수나 보험금 규모는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경상사고 부상자만 늘어나는 건 신규 유입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가벼운 부상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면 교통사고 부상자의 보상심리를 부추기게 된다.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으로 보험료 인상요인만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현대·DB·KB·메리츠 상위 5개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지난달 누적손해율은  89.2%까지 치솟았다. 보험사들은 적자를 보지 않는 적정손해율을 78% 수준으로 본다. 올해 두 차례의 원가상승 요인에 따른 자동차보험료 인상이 이뤄졌지만, 보험금 누수를 잡지 않는 한 보험료 인상 이슈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