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특금법 통과시켜야 하는데…여야 견해차 극명
여 “제도적 틀 마련” 야 “시장 죽이는 과도한 규제”

<대한금융신문=문지현 기자> 금융당국이 내년 6월까지 가상화폐 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 등의 규제를 씌워야 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제 기준에 따라 거래소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당장 발등의 불이지만, 해당 법안을 두고 일부 의원들이 가상화폐 시장이 잠식될 것을 우려하고 있어 연내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31일 국회에 따르면 정무위원회는 지난 24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하 특금법)’을 심사했지만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날 안건에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금법 개정안을 비롯해 제윤경 의원안과 전재수 의원안이 함께 올라갔다.

이 중 김병욱 의원이 금융당국과 논의를 거쳐 발의한 특금법 개정안은 국제자금세탁방지 기구인 ‘FATF'의 지침을 반영한 법안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신고제 도입, 자금세탁방지 의무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FATF는 지난 6월 가상화폐를 ‘가상자산’으로 정의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회원국 모두에 '가상자산 취급업소'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할 것을 주문하면서 1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금융당국은 FATF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6월까지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해 특금법의 연내 국회 통과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기간 내에 해당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FATF 회원국은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이날 여야 간사들은 발의된 법안 중 김병욱 의원안이 FATF와 G20 등의 국제 동향을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하고, 해당 안을 중심으로 특금법 개정을 논의했다.

여야는 FATF의 지침에 따라 서둘러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이뤘으나, 해당 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시장을 잠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견을 보였다.

김병욱 의원안에 담긴 내용 중 거래소의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실명확인계좌 발급 의무화 등은 FATF의 권고안에는 없지만 금융당국이 국내 시장상황을 고려해 넣은 내용이다.

해당 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받지 못한 거래소나 ISMS 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거래소는 신고 요건조차도 갖추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거래소는 벌집계좌로 불리는 자체 법인계좌로 투자자의 돈을 받아 원화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아직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받을 수 있는 거래소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FATF의 권고 수준을 넘어 규제 측면에만 초점을 둔 해당 안이 단편적이라며 종합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상화폐 업계의 활성화를 위한 진흥법 등이 우선되고 그 위에 가상화폐의 악용 등을 막는 규제가 씌워지는 게 맞는 순서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금융위는 은행이 발급한 실명확인계좌를 가상화폐 거래에 이용하는 것을 모범사례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 때문에 거래가 말라버렸다. 시장을 아예 죽여 놓고 모범사례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며 "가상화폐 악용을 막겠다는 특금법 입법 취지는 이해하지만, (업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진흥법이 없는 상태에서 규제를 먼저 씌우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당과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활성화의 경우 악용을 막는 특금법과 다른 측면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특히 금융당국은 여전히 가상화폐를 활성화하는 측면의 제도화에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규제가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그다음에 산업의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7년 말부터 발생한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락과 잇따른 해킹 사건으로 인해 쉽사리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법으로 인정한 나라는 소수일뿐더러 활성화보다는 자금세탁방지 목적의 국제기준이 먼저 정립된 영향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가상화폐 활성화는 특금법과 다른 측면에서 봐야 하는 문제다"라며 "특금법은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 등 불법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만 심의해 (특금법을) 통과시키는 게 맞는 일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지난 24일 법안소위에서 일부 의원들이 지적한 사항을 보완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관계부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 있어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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