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보험사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금융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제 보험과 기술의 결합을 뜻하는 인슈어테크(InsurTech)는 인공지능을 빼놓곤 이야기하기 어렵다. AI는 사람이 물어보는 내용을 ‘자연어 학습’을 통해 이해하고, 보험계약 관리부터 심사, 판매까지 알아서 척척 해낸다. 말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고 이해도 한다. 공장의 생산물 완제품을 사진으로 찍으면 AI가 알아서 어떤 업종인지 알아서 찾아준다. 공장 관리 상태까지 확인해 정확한 보험료 산출과 보험가입 여부까지 알려준다. 자동차사고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 예상되는 수리비 견적까지 알아서 척척 계산한다. AI설계사, AI보상직원이 상용화 단계에 근접한 것이다.

소비자와 맞닿기 시작한 AI

보험사들이 AI를 사용하는 직접적 이유는 프로세스의 효율화다. 머신러닝을 통해 인지, 학습, 추론 등 3단계 과정으로 이어지는 AI는 이제 보험사가 단순히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넘어 효율성과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그간 비용과 시간을 들였던 분야에 업무혁신을 이뤄줄 수 있는 기술들이 속속 태어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AI가 고객과 직접 대화하는 ‘챗봇’이다. 간단한 보험 상품 설명이나 주의할 사항을 단순히 알려주는 것에 벗어나, 고객이 원하는 질문을 직접 찾아주고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DB손해보험은 지난 2017년 1월부터 인공지능, 빅데이터 관련 15명의 인슈어테크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AI를 활용해 보험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미 챗봇 서비스’를 도입했다. 내년 중엔 금융위원회 혁신서비스로 추가 지정한 ‘AI 인슈어런스 로보텔러’도 선보일 예정이다. 암이나 운전자보험 등 비교적 설명이 간단하고 쉬운 상품이라면 로보텔러가 가입 상담부터 체결까지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진행한다. 

보험에 대해 잘 알고, 비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가입했던 다이렉트(인터넷)보험보다 문턱이 한 단계 낮아질 수 있다. 스스로 가입이 어렵던 보험의 ‘정보비대칭성’이 AI로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삼성생명은 자체 개발한 AI 챗봇인 ‘따봇’을 운영 중이다. 딥러닝 기술을 토대로 1년간 개발된 따봇은 고객의 질문을 이해하고, 문맥을 이해하면서 대화하는 2세대 챗봇 서비스다. 예를 들어 “내 보험 조회해줘”라고 쓰면 보험계약 현황을 알 수 있고, “보험계약대출 받고 싶어” 등을 입력하면 보험계약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밖에 “40대 남성 보험 추천해줘”, “사망보험금 청구서류 알려줘” 등을 질문하면 이에 대한 대답을 빠르게 진행한다.

메리츠화재가 선보인 AI 기반 챗봇 ‘몬디’는 고객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뒀다. “35세 남자는 어떤 보험이 좋나요”, “실비보험이 도수치료 보장이 되나요” 등 평소 전화 상담에서 자주 받는 질문들을 추려 비슷한 질문을 하는 고객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보장성보험을 어려워하는 고객에게 단순한 대답이 아닌, 그들이 주로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아서 포착해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을 더했다. 

메리츠화재가 개발한 700여개의 시나리오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로 개발, 채팅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플랫폼과의 연동도 가능하다. 향후에는 메신저 봇과 대화만으로 보험가입까지 가능한 펫보험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직접 보고 보험계약 판단까지

삼성화재는 재물보험과 장기인보험의 계약심사에 AI를 활용한 ‘AI 계약심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장기인보험에 적용된 AI는 계약 심사자들이 추가 확인없이 바로 승인한 유형들을 학습했다. 그 결과 전산심사만으로 가능한 가벼운 질병이력들은 계약심사자의 별도 확인 없이 가입이 가능해져 보험소비자의 심사대기 시간이 크게 줄었다.

재물보험에는 이미지 분석 AI모델이 사용됐다. 가입설계 시 설계사가 사진만 찍어 전송하면 AI가 보험료를 산출해주고 사업장의 관리 상태까지 확인해 자동으로 가입을 승인해준다. 이를 위해 AI는 삼성화재가 가진 17만장의 사진을 학습했다. AI모델이 재물보험 계약자의 사업장 완제품을 판독하면 특허를 받은 재물보험 컨설팅 시스템이 적용돼 업종을 알아서 판독해준다. 
덕분에 배경지식이 부족한 설계사라도 정확하게 보험료(요율)를 산출해 고객에게 안내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재물보험인 ‘수퍼비즈니스’ 상품의 전산승인률은 기존 67.1%에서 82.4%로 크게 향상됐다. 향후 삼성화재는 고객이 직접 보험자와 설계를 진행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보생명은 최근 자연어처리 기반 AI 언더라이팅 시스템인 ‘바로(BARO)’를 내놓고 상용화에 돌입했다. 바로는 인간처럼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언더라이터를 대신해 보험계약의 승낙이나 거절에 대한 의사결정을 처리한다. 고객이 정해진 기준에 부합하면 자동으로 계약을 승낙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계약을 거절하는 식이다. 조건부 승낙에 해당해 인간의 판단이 필요한 경우 언더라이터가 참고할 수 있도록 다양한 키워드 중 가장 유사한 5개의 결과를 추려 제공한다.

바로가 기존 AI계약심사 시스템과 다른 건 자연어 학습기반 머신러닝 시스템이란 점이다. 교보생명이 구축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해진 언어 규칙을 벗어난 유사 문장의 의미까지도 분석할 수 있다. 특약 등이 포함된 복잡한 보험 상품도 처리할 수 있고, 자가 학습능력을 통해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정확성도 개선된다.

한화손해보험은 AI가 자동차 사고 시 수리비 견적을 예측할 수 있는 ‘수리비 자동견적시스템’을 손해보험사 최초로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사고차량이 입고된 공업사가 파손상태 이미지를 전송하면 AI가 학습하고 인식해 범퍼, 휀더, 도어 등 차량 파손 부위·단계별로 정확한 수리비 견적을 산출한다. 

또 시스템에 사고차량의 차종, 연식, 수리방법 등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설정해 보다 정확한 자동 견적을 작성하고 공업사가 요청한 수리비 청구 데이터와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다. 
한화손보는 현장출동직원, 보상담당자가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사고차량 파손 사진을 촬영해 바로 수리비 견적을 산출할 수 있는 기능도 내놓을 계획이다.

한화생명은 고객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AI를 사용했다. 고객 스스로 건강관리를 도울 수 있도록 만든 개인건강정보 기반 애플리케이션(앱)인 ‘헬로(HELLO)’다.  앱의 주 기능은 사용자의 건강검진 정보나 활동량, 영양, 수면 등 일상생활에서의 건강정보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건강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본인인증을 하면 과거 10년치의 건강검진 정보를 보여주고, 건강 수준을 나이로 환산한 생체 나이를 분석해주는 등이다. 여기에 한화생명은 AI카메라를 활용한 식단 및 영양분석 기능을 추가했다. 본인이 먹는 음식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면 음식의 종류, 영양소, 칼로리 등을 AI가 자동으로 분석해 알려준다. 

단순·반복 업무도 로봇이 대신

보험사의 디지털 혁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Robotic Process Automation)다. PC를 기반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행동을 로봇 소프트웨어가 동일하게 모방해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이다. 업무 담당자들이 정한 규칙과 스케줄로 반복작업을 하는 RPA 로봇은 주말, 심야에 상관없이 사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담당자들은 이런 RPA 로봇을 통해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DB손해보험은 RPA 전문기업 아주큐엠에스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1차 RPA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현재 DB손보에서는 총 28개의 업무가 RPA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보고서작성 △계약관리 △전자문서관리 △자료수집 △모니터링 △지수업데이트 등의 업무를 RPA를 통한 자동화 업무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전사적으로 연간 약 2만9000시간이 절감 될 것이 예상된다. DB손보는 지속적으로 신규업무에 RPA를 적용할 예정이다. 또 단순 솔루션 도입이 아닌 RPA 로봇과 사람의 협업이란 관점으로 전략적인 RPA 운영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총 50여개 업무에 RPA를 도입해 반년만에 연간 2만4000시간을 절약했다. RPA 정착으로 단순·반복업무가 줄자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는 것이 삼성생명의 설명이다. 삼성생명은 RPA 고도화를 위해 각 부서마다 개발 과제를 발굴해 워크숍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후 약 300개의 RPA 후보 과제를 선정, 1차적으로 50개의 과제가 우선 적용됐다. 향후에는 챗봇 기술과 연계한 지능형 RPA로 고도화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미래에셋생명도 부서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전사 35개 업무, 43개 프로세스에 RPA를 도입했다. 고객의 수익률 통계 산출과 같은 대량 업무나 보험금  지급 심사 등 반복 알고리즘을 갖는 업무는 RPA가 자동으로 진행하는 식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RPA를 통한 업무자동화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보다 창의적인 업무에 매진할 수 있어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는 주 52시간 근로에 필수 요소”라며 “직원들이 더욱 가치 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RPA는 더욱 고도화해야 할 기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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