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9 18:00 (일)
승리 향해 몸부림친 우리에게 손뼉을 치자
승리 향해 몸부림친 우리에게 손뼉을 치자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12.30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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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두 번째 10년의 시작, 경계에서 세대교체하는 우리
새로운 문법 받아들이며, 기꺼이 보내자 2019년이여 아듀!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오는 경계선에 서 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어제와 내일을 바라다보게 된다. 여기서 경계선인 오늘은 엑스트라다.

평소에는 오늘을 중심에 두고 계획을 짰지만, 연말연시만 되면 푸대접받기 일쑤다. 그것이 경계선에 서 있는 오늘이다. 이 시기에 가장 자주 접하는 단어 중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단어의 최초 출전은 반고의 <한서(漢書)>다.

서한의 애제(哀帝) 시절 재상으로 등용된 왕가의 상소문에 담긴 기록인데, 몇 개월 근무한 관리가 자리에서 물러나 교체될 때에도 거리가 막힌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그렇게 들고 나감이 번잡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단어가 오늘날의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은 당말송초의 시인 서현의 ‘제야(除夜)’라는 시에서다. 서현은 이 시에서 ‘겨울밤 등불은 깜박이고 시간은 더디 가건만,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 일은 속임이 없구나(寒燈耿耿漏遲遲 送舊(故)迎新了不欺, 한등경경루지지 송구(고)영신료불기)’라고 적고 있다.

마치 말년의 공자가 시간의 흐름을 말하면서 ‘흐르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을 머무는 법이 없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서자여사부 불사주야)’라고 한 대목이 떠오를 만큼 경계선에서 옛것과 새것의 오고 감을 관조하는 듯한 표현이다.

우리는 지난 여름 한낮 뜨거운 태양이 자신의 정수리를 내리쬘 때, 자신의 그림자가 발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똬리를 틀었던 그 시간의 작렬하는 뜨거움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한 해의 가장 긴 밤을 보낸 지 며칠 되지 않은 세밑의 차가운 정오의 시간, 비스듬하게 비치는 햇살에도 고마워한다.

같은 태양이지만 지내는 계절 속에서 햇볕도 변주하는 공간에서 시간은 이처럼 살갗에 구체성을 띠고 다가온다.

매일 같은 태양 같지만, 전혀 다른 태양으로 느껴지는 것은 맞이하는 사람의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도 있겠지만, 자연은 매일같이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태양이라고 생각하며 ‘익숙함’에 의존해서 판단하고 만다.

계절의 한 가운데서 그 계절의 본질을 맛볼 수는 없다. 비켜서 있을 때 본질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말년의 공자가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면서 어제와 다른, 그리고 내일과도 다른 물의 형태를 보고 ‘이와 같구나’라고 말했던 것처럼 시인 서현은 옛것과 새것이 어기지 않고 오가는 것을 경계선에서 바라봤다. 우리가 세밑에서 지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지중해 기행>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능가하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견고한 본질을 붙잡고 씨름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향한 몸부림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좀 더 노력하다 보면 ‘승리’를 향한 몸부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부연한다. ‘보상을 비웃으며, 용감하게 살다 죽는 것’, 인간의 가치는 오직 이것뿐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 2019년은 분명 창조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절의 수상함에 주눅들 수 없어서 창조하는 삶을 더욱 고민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눈앞에 다가와 있는 2020년은 더욱 ‘창조하는 삶’이 강조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세기 인간을 21세기에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정작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21세기형이니 점점 홀대받으면서 ‘창조’와 ‘혁신’에 내몰릴 것이기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옛것에 비유될망정, 새것과 함께 하는 경계선이 없이는 새것이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고 있다.

21세기의 문법을 갖춘 인간형이 점점 중심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임무를 교대하지 않고 바로 교체가 이뤄지는 일도 없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왕가의 말처럼 구임자와 신임자간의 교체의 시기, 도로가 번잡하다고 했듯이 21세기의 첫 10년이 끝나고 두 번째 10년이 다가오는 시기도 도로는 번잡을 넘어서 교착 상태다.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말을 기억하자.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향한 우리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지난 한 해 승리를 향해 몸부림친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자. 아듀 2019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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