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계 개편 위원회, 성과 없이 18일 활동 종료
노조 “노동의 조건, 정부가 손댈 문제 아냐” 방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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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정부의 은행권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두 번째 시도가 사실상 무산됐다. 개편의 시작 단계로 볼 수 있는 금융노조와의 사회적 대화에서부터 막혔다.

연차만 채우면 높은 연봉을 받는 은행에 저성과자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사기업인 은행을 정부가 나서 급여체계를 손본다는 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상당히 높아 은행원들의 ‘철밥통’은 앞으로도 지켜질 공산이 커 보인다.

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금융산업위원회가 이달 18일 자로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지난 2018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직무급제 도입 수행에 맞춰 출범한 금융산업위원회는 ‘금융산업 발전과 좋은 일자리’를 위한 공감대를 토대로, 성과와 관계없이 호봉을 토대로 임금을 산정하는 금융사의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해왔다.

주 타깃은 다른 업종에 비해 유독 호봉제 체계가 공고한 은행권이었다.

금융산업위원회 조사 결과 국내 14개 시중은행 가운데 일박 직원을 기준으로 연봉제를 채택한 곳은 1곳뿐이다. 6곳은 급과 관계없이 근무 경력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단일호봉제, 7곳은 직무의 난이도나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직급별 호봉제를 택하고 있다.

단일호봉제와 직급별 호봉제 모두 개인 실적이 좋지 않아도 근속 기간이 쌓이거나 기간에 따라 직위가 상승하면 연봉이 오른다.

호봉제 덕분에 은행원들은 철밥통이나 억대 고액 연봉자로 불릴 만큼 안정적이면서 임금이 높은 직장인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말 기준 연봉 1억원 이상 은행원은 30.1%를 기록했다.

직원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난 2016년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연봉제 도입 시도가 있었지만, 금융노조 등 노동계의 강한 반발로 모두 무산됐다. 당시 IBK기업은행은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하는 단계까지 갔으나, 의결 직후 노조가 제기한 성과연봉제 도입 무효소송에서 패소해 호봉제 폐지는 결국 없던 일로 돌아갔다.

이후로도 정부의 은행권 임금체계 개편 시도는 계속됐다. 금융산업위원회는 지난달 6일 연봉제 도입과 관련 노사 양측의 요구 사안을 수용한 합의문 초안을 마련하고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고용노동부가 직무기반 임금체계 확산을 위한 메뉴얼을 발간하자, 금융노조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지속될 경우 사회적 대화 참여를 중단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금융산업위원회에 대해서도 임금체계 개선 초안 내용에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오는 18일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는 금융산업위원회는 더 이상 임금체계 개편에 노사 합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 권고안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금융산업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 활동 종료 전 한 차례 회의가 열릴 수 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태다. 사실상 이번 위원회를 통한 은행권 임금체계 개편은 종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령화 시대가 됐고, 정년연장이 전 산업의 핵심 이슈다. 호봉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며 “개선을 위한 논의는 지속돼야 하고,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금체계 개편 반대에 대한 금융노조 입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모든 생계를 임금에 의존하는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 조건이고, 노사 관계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임금에 대한 결정은 철저하게 노사 합의를 통하도록 법이 보호한다”며 “정부가 임금을 멋대로 주무른다면 노동자의 생계는 불안정해지고 노사관계파탄은 물론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과연봉제 도입 시 과다경쟁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은게 현실”이라며 “은행원들이 실적경쟁과 단기성과에 집착해 부실 대출이나 불완전판매 등이 발생하면 결과적으로 가장 피해를 모는 건 소비자들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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