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9 01:05 (목)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3.23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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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은 아니지만, 모두 최악을 머릿속에 그리는 시절
책임은 책임대로 짊어지고 더 많이 고독해야 할 운명
위기 속에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위기 속에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최악은 아니지만 모두 최악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실제적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나라 밖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심각하기만 하다. 그 어떤 디스토피아 소설이 그리고 있는 상황보다, 우리가 오늘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고 말해도 전혀 틀리지 않은 정도의 상황.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발표되고 있는 숫자에 비례해 줄고 있지만, 실물 경기에 대한 두려움은 각국의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크기에 비례해 커져만 가고 있다.

그 두려움의 크기가 결국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어져 재해재난 기본소득의 도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선택했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논의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추경예산을 확보해 진행할 계획에 있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야당으로서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지만, 한겨울 극한의 추위보다 더 몸을 움츠리게 한 코로나19의 맹위 앞에 꽁꽁 얼어붙은 경기를 녹일 최소한의 마중물이 절실하다 보니 야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지로 보인다.

그런데 실물 경기 위축에 대한 두려움은 서민들만의 몫만은 아니다. 은행을 비롯한 각종 금융회사의 수장들은 실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런데 2020년 계획을 세우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블랙스완’과 같은 일이 연초에 발생했다. 이에 따라 그들이 느낄 부담감은 미래의 불확실성의 크기만큼 커져만 가고 있다. 그것도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에 맞춰 생존을 위한 전략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또 지표를 향해 조직을 추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리더들의 영역에선 용납되는 서사구조가 아니므로 리더들의 두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은행과 금융회사들은 기업의 영속성만을 고려하면서 전략을 펼 수 없는, 역할론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경기순환의 과정에서 수없이 발생한 금융시장의 붕괴는 각국 정부들에게 불황국면에서 금융권의 공공성을 강조하도록 학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의 발생 초기부터 감독기관은 ‘우산론’ 등을 펼치면서 공공성을 강조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20년 금융권의 수장을 맡은 리더들의 심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책 혹은 전략이 유효할지 판단할 근거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전염병이 만들어낼 최종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마치 눈을 꽁꽁 감싸 매고 자동차가 즐비한 길을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2020년에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환영받았던 이상형의 리더십은 아닐 것이다. 위기 속에서 해법을 내놓으면서 강한 추진력을 보이는 한편, 그때그때 발생하는 일에 임기응변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더욱 선호되지 않을까.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큰 도둑이지만, 난세에는 영웅이라고 평가받았던 ‘조조’. 말 위에서 권력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말 위에서 권력을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유방’ 등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필요한 리더십이 다름을 알게 해주는 사례이다.

3월 주총 시즌을 맡아 많은 기업이 새롭게 리더십을 세우고 있다. 이미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를 한 은행과 금융회사도 있지만, 아직도 이 시절에 필요한, 최적의 수장을 찾는 곳도 많다. 어제까지는 적합하다고 평가받았을 리더가 오늘은 후순위로 밀리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우리 경제에 드리워지고 있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 속에서 기업을 순항시킬 선장을 찾는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도 공공성을 잃지 않으면서 기업의 영속성을 챙겨나가야 하는, 이중 삼중의 장애물을 없애가면서 숫자로 말해야 하는 수장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받는 리더보다 두려움을 주는 리더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동안 강조됐던 덕목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에 해당하는 덕목을 더 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기왕에 리더십을 확보한 수장들도 다른 얼굴을 취할 것이다.

리더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오해하진 말자. 리더 자신도 더 많은 시간을 고독해야 하고, 암흑의 바다에서 온갖 책임을 다 지고 걸어야 하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가시 면류관을 쓴 순교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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